“80년 전, 미국과 동맹국들은 싸워야만 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싸웠습니다. 1944년 6월 6일(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수개월에 걸친 치열한 계획 끝에 동맹국들의 군대가 영국 해협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승리가 확정된 후 미국은 서구의 평화와 안보를 뒷받침해온 ‘동맹’의 형성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미 연방상원 내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82) 원내대표가 오는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고립주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외교 기조가 동맹의 기본 가치를 부정한다며 “미국을 덜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원서 7선(選)을 역임한 그는 상원 공화당 내에서 미 보수주의의 본류(本流)를 상징하는 얼마 남지않은 의원들 중 한 명이다. 매코널은 트럼프와의 개인적 불화 및 외교 기조를 둘러싼 의견 차이 등으로 트럼프 진영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매코널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인 6일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1930년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기고에서 “(80년 전인) 지난 1944년 이날 서유럽의 해방은 엄청난 희생으로 시작됐다”며 “미국의 병사들, 수병, 공군, 해병대가 (유럽) 동맹국에 합류해 맞서 싸웠던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전쟁을 (힘겹게) 끝냈다”고 했다.
이어 “(요즘 들어) 우리는 과거 유럽의 강대국들과 미국이 호전적인 독재자들이 발호하는 걸 순진하게 방관했기 때문에 전 세계가 전쟁(2차 세계대전)에 휩싸이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사람이 이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했다.
1930년대 당시 미국 내에선 유럽의 전쟁 및 일본 군국주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해외 개입 문제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널리 퍼졌었다. 1940년에 공화당 내 파벌로 만들어진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는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을 점령하고 있었을 당시에도 미국은 ‘불가침’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매코널은 “우리는 영향력이 큰 고립주의자들이 어떻게 수백만 미국인에게 동맹과 파트너들의 운명이 우리 자신의 안보와 번영에 중요하지 않다고 설득했는지 망각하고 있다”며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진영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나토(NATO) 등 집단 안보 체제 등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매코널은 북·중·러·이란의 위협을 언급하고 “오늘 미국과 우리 동맹들은 추축국(樞軸國,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일본·이탈리아) 군대가 유럽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행진한 이래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1930년대에 우리의 대응을 방해한 이들과 같은 세력의 일부가 재등장했다”며 “미국 우익에서 목소리가 큰 일부는 설득력을 잃은 전쟁 전 고립주의를 부활하고, 전후 평화를 유지해온 동맹 제도의 기본 가치를 부정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매코널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개입에 반대했던 고립주의자들의 이야기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며 “오늘의 고립주의자들이 지역 분쟁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에 중요하지 않다는 망상에서 깨어나도록 하는데 진주만 같은 또 다른 파괴적인 공격이 필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오늘의 분쟁을 억제(deter)하는 것은 내일 싸우는(fight)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고도 했다.
매코널은 상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이 최근 국방 예산 550억달러(약 75조원) 증액을 제안한 데 대해 “그의 계획을 듣고 고무됐다”며 “(미국은) 조선업, 장거리 군수품 및 미사일 방어 생산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늦은 조치를 밟아 나가기를 촉구한다”고도 했다. 위커 의원은 지난달 29일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고, 한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으로 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코널처럼 동맹을 중시하고, 중러 등의 위협에 맞서 동맹간 규합을 중시하는 전통적 공화당 내 ‘보수주의’ 기조는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 선거를 통해 매코널과 같은 의원들은 사라지고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미 정가는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