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트럼프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4년 만에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일 10년 만에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진보 성향이 더욱 강한 곳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겐 정치적 적진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과거 ‘미국 쇠퇴의 상징’ ‘더럽고 마약이 만연한 곳’이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랬던 그가 샌프란시스코를 찾으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실망한 실리콘밸리의 거부(巨富)들 상당수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벤처 투자 업계 거물 데이비드 삭스가 자택에서 주최한 선거 자금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 1인당 30만달러(약 4억1000만원) 이상을 내야 만찬장에 입장이 가능했는데, 주최 측은 “최소 1200만달러가 모금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 창업 멤버인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인 삭스는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상대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바이든 정부 때문에 세계가 불타고 있다”며 트럼프를 위해 뛰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암호화폐·블록체인 업계의 큰손들도 다수 참여했다.

트럼프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주말까지 로스앤젤레스(LA), 뉴포트 비치 등 인근 도시를 방문해 가상현실(VR) 장비 업체 오큘러스 창업자 파머 러키 등이 주최하는 모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빅테크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실리콘밸리 일대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다. 이민·기후변화·성소수자 권익 같은 진보 이슈를 중시하고 아시아·라틴계 이민자 인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트럼프 지지 선언이 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벤처캐피털 회사인 세쿼이아캐피털의 숀 매과이어 파트너는 지난달 30일 트럼프가 형사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직후 “사법부가 무기화되고 있다”며 트럼프에게 30만달러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에게 거액을 후원한 소프트웨어 기업 팰런티어의 고문 제이컵 헬버그도 최근 트럼프에게 100만달러를 후원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인적 자원 양성을 주도하고 있는 워싱턴 DC의 비영리단체 ‘아메리칸 모먼트’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의 트럼프 지지 선언이 늘고 있는 것은 바이든 정부가 집권 후 추진한 빅테크 규제 일변도 정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테크 업계에서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장은 ‘다스 베이더(영화 ‘스타워즈’ 속 악당 캐릭터)’라 불릴 정도”라며 “실리콘밸리와 민주당의 오랜 우정이 붕괴 직전”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의 초기 투자자였던 키스 라보이스는 지난달 억만장자에게 최소 25%의 연방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부의 증세 계획을 언급하며 “이런데도 바이든을 지지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세율이 미국 50주 가운데 가장 높고, 최근 몇 년간 범죄 노출률과 마약 중독자가 급증한 것도 지지 이탈의 원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