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현 전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은 10일 “중국·러시아·이란·북한 같은 강력한 수정주의 세력의 부상으로 최근 몇 년 간 세계적인 혼란이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며 “미국이 이른바 ‘팀 웨스트(Team West)’의 리더로 전문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강력한 동맹과 군사력 구축, 가치 공유 같이 냉전 시대와 맥을 같이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고 했다. 한·미·일 협력 제도화의 이정표를 세운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대해서는 “어떤 지도자도 합의 정신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일방적인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발언을 한 건 지난해 11월 원장직에서 물러난 후 약 7개월 만이다.
김 전 원장은 이날 국립외교원(원장 박철희)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한미동맹 강화 대화’ 세미나 기조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원장은 최근 밀착하고 있는 북·중·러 등에 대해 “이 국가들은 권위주의, 독재 통치, 반(反)서구 입장을 공유하며 기존의 국제 협약에 도전하고 있다”며 “글로벌 안정과 국제 규범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특히 중국을 콕 집어 “국제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 가치를 직접 위협하는 통치 모델을 갖고 있고, 대만에 대한 입장이 동북아는 물론 전세계 평화·안보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한국·일본 같은 나라에선 중국의 힘과 영향력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팀 웨스트’와 중국을 수장으로 하는 ‘독재 연대’ 간 대립 구도를 상정하며 “이 다차원적인 게임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팀 웨스트’가 냉전 시대 때와 같이 민주주의, 자유시장, 국제 동맹 등에 기반한 전략을 구사해 행동해야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전문적인 리더십, 미국과 동맹국 간의 이해관계의 정렬(alignment) 및 신뢰·소통 등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은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는 단순히 무력 대결이 아닌 대조적인 두 개의 거버넌스, 발전 모델 간의 힘 겨루기”라고도 했다.
김 전 원장은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이 3국 협력을 제도화한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3국 합의의 정신이나 약속을 훼손할 수 있는 일방 행동은 피해야 한다”며 “단결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한·미·일 3국에서 추후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와 무관하게 협력의 연속성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전 원장은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문구를 인용하며 “캠프 데이비드 구상이 충실히 이행되면 한·미·일 관계 강화는 물론 인도·태평양, 나아가 세계 안보 번영을 위한 미래 비전도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에 파견한 한미정책협의단 일원으로 CSIS를 찾았던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한 참석자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음 같았는데 여러분이 하는 말은 음악같다’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며 이번 정부서 이뤄진 한미동맹 강화를 자평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한국은 공급망 문제를 비롯한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라며 미국·영국·호주 3국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의 ‘필러2(첨단기술 공동 연구·개발)′ 분야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한국 역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