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핵 추진 잠수함이 12일 쿠바 아바나항에 입항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해군 비행장에서 불과 160km 떨어진 곳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탑재한 선박이 아니라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의미를 평가 절하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 일로인 시점에 이뤄진 것이라 무력시위의 일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날 북방함대 소속 카잔 핵 추진 잠수함과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 파신 유조선, 니콜라이 치케르 구조 예인선 등 4척이 아바나항에 입항했다고 밝혔다. 카잔함과 고르시코프함은 각각 2017년과 2018년에 건조된 러시아군의 최신 군함이다. 카잔함은 길이 130m에 배수량이 약 1만3000t이고, 최고 600m까지 잠항이 가능하다. 로이터는 “러시아 군함이 17일까지 머물 예정이고 이 기간 러시아와 쿠바 혁명군이 함께 미사일을 활용한 600km 거리 타격 훈련을 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쿠바는 오랜 동맹 관계로, 러시아가 주기적으로 쿠바 영해·영공에 군함과 전투기를 보내 훈련을 시행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이 반발하면서 전개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러시아와 쿠바 당국은 이번 방문이 미국을 겨냥한 군사행동이 아닌 양국 교류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알렉산드르 모이세예프 러시아 해군 총사령관은 “이번 방문은 러시아와 쿠바의 대규모 협력 과제이자 장거리 캠페인 임무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쿠바 국방부도 “핵무기를 운반·탑재한 선박이 아니라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AP에 “일상적인 방문 활동”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을 지원하는 미군 임무와 맞물려 러시아 군사훈련이 강화됐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에서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 영토 내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고 승인했는데, 이에 대한 무력시위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긴밀하고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러시아 군함이 과거 조지 부시·버락 오바마·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도 쿠바에 입항한 점을 언급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