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세장 가보니… 4년 전과 달리 젊은이들 북적 - 15일 미국 미시간주(州) 디트로이트에서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가 주관한 국민 전당 대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당신은 해고야!(Joe Biden, You're Fired!)'라고 쓴 플래카드 등을 들고 있다. 미시간은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AFP 연합뉴스

“쇠락한 미국을 되살리는 데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적들이 이깁니다. 트럼프에게 투표하라고 주위 친구들을 설득하세요.”

15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미 최대 청년 보수단체 ‘터닝포인트 USA’ 행사장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민석 특파원

15일 오후 미국 미시간주 최대 도시 디트로이트의 대형 전시장에서 열린 미국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 행사장에서 이 단체 설립자 찰리 커크(30)가 이렇게 말하자 관중 4000여 명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청중 상당수는 20~30대 앳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백인 남성이 많았지만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여성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보였다. 이 단체는 미시간에서 전날부터 2박 3일간 정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커크를 비롯한 연사들은 이날 특히 2040 유권자들의 투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대규모 ‘트럼프 세몰이’에 나선 것이다. 오후 6시 트럼프가 직접 연단에 서자 행사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트럼프는 “참석률이 엄청나게 높다”며 “오늘 여기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11월에 미시간에서 승리할 수 있겠다”고 했다.

15일 미국 북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 행사에 참가한 디트로이트 지역 10~20대 학생들. 오언 지라르(19, 맨 왼쪽)은 "바이든의 경제 실정으로 젊은 층들은 집 살 생각도 못한다"며 "젊은 층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이민석 특파원

미시간은 이번 대선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다. 특히 디트로이트는 과거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영광을 누리다 몰락한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 중심 지역)을 상징하는 곳이다.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고,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했다. 583명의 선거인단 중 15명이 걸려있어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9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조 파업 현장을 지지 방문할 정도로 공을 들여왔다.

대도시와 젊은 층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그런 통념과 확연히 달랐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스스럼없이 트럼프를 찍겠다고 이야기했다. 오언 지라르(19)는 “바이든의 경제 실정으로 젊은 층은 집 살 생각도 못 한다”며 “젊은 층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제임스 하트(20)씨는 “바이든이 너무 고령이고 힘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는데, 특히 경제 분야에서 너무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촌스러운 동네 할아버지 바이든보다 트럼프가 경제 문제는 훨씬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 같은 트럼프를 찍겠다는 소신을 명확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행사장 분위기는 젊은 느낌이 확연했다. 곳곳에는 ‘자유의 목소리를 억압해선 안 된다’ ‘큰 정부는 당신의 부(富)를 빼앗아 간다’ ‘사회주의자 남자 친구와 헤어져라’ 등 문구가 산뜻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색깔의 글씨로 내걸려 있었다. 일선 고교와 대학에 배포하기 위한 전단과 펼침막, 책자 등이 진열돼 있었다. 터닝포인트 USA 관계자는 “젊은 층이 ‘쿨’하게 여길 수 있도록 글씨체와 색감 등 디자인에 특별히 신경 썼다”며 “세련된 ‘굿즈’를 만들어 젊은 층에 보수 이념을 효율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행사장엔 요란한 힙합과 록 음악이 울려 퍼졌다. 휴대폰 소음 측정 앱을 켰더니 천둥소리 수준인 105데시벨을 가리켰다.

요동치는 젊은 유권자의 표심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미 시카고대 산하 여론조사 기관 젠포워드가 지난달 10일부터 22일까지 18~40세 유권자 20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바이든에게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33%로 트럼프(31%)와 불과 2%포인트 차이였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겼던 흑인 그룹(바이든 33%, 트럼프 23%)의 바이든 이탈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히스패닉계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선 바이든(28%)보다 트럼프(32%)에게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더 높다고 나왔다.

그간 민주당 성향이 뚜렷했던 젊은 층 민심이 바뀌고 있는 것은 결국 ‘경제 문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조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비율인 18%가 인플레이션이라고 대답했다. 경제 성장(11%)이 둘째로 많았고 가자 전쟁(4%)이나 우크라이나 전쟁(1%)이라고 답한 비율은 소수였다. 공영 라디오 NPR은 “결국 바이든 행정부 때 심각해진 고금리·고물가 문제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이 깊이 쌓여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터닝포인트 USA를 이끄는 커크는 또래 유권자들을 투표장 밖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여러분 주위에 투표 성향이 낮은 유권자를 찾아 유권자 등록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투표할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 중 친(親)트럼프 성향의 유권자가 매우 많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주위를 잘 관리하지 못해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한다면, 11월에 우리는 바이든이 재선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앞서 전날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이자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라라 트럼프도 이 행사 연단에 올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터닝포인트는 미시간과 함께 애리조나, 위스콘신 등 경합지 3주에서 투표 독려를 위한 직원을 고용하는 데 수천만 달러를 지출했다고 미 언론들은 최근 보도했다.

미 정가가 미시간의 젊은 유권자들을 주목하는 건 이들의 투표 참여율이 다른 곳보다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 터프츠대의 시민교육참여 정보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미시간주의 18~29세 유권자 투표율은 54%로 최상위권에 속했다. 2022년 중간선거 때도 미시간 내 18~29세 투표율은 37%(전국 평균 투표율 23%)로 가장 높았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은 미시간주에서 트럼프를 15만4000표 이상 차이로 승리했지만, 최근 미시간 젊은 층의 지지율이 바이든과 트럼프 간 동률에 가깝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취약층으로 여겨지던 유색인종 지지세가 두드러지자 트럼프의 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그는 이날 행사에 앞서 디트로이트의 흑인 교회에서 원탁회의 형식의 모임을 갖고 “나는 링컨 대통령 이후로 흑인 국민들을 향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이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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