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소속 톰 에머(가운데) 하원 원내총무가 26일 미국 워싱턴DC의 왓킨스 소프트볼 필드에서 여성 의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X(옛 트위터)

지난 26일 저녁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사당 부근에 있는 야구·소프트볼 경기장인 ‘왓킨스 필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4000여 관중이 함성을 쏟아냈다. 양팀 유니폼에서 두드러지는 건 분홍색이었다. 한쪽 팀 유니폼의 가슴팍에는 의회를 뜻하는 ‘콩그레스(congress)’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찍혀 있었다. 워싱턴과 지역구를 바삐 오가며 의정 활동을 하는 여성 연방 상·하원 의원들로 구성된 ‘팀 콩그레스(Team Congress)’다. 이에 맞선 상대편 팀 유니폼의 같은 자리에 기자단을 뜻하는 ‘프레스(press)’가 역시 분홍색으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의원들을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으며 일거수일투족을 때로는 까칠한 뉴스로 내보내는 기자 중 여성으로 구성된 팀 ‘배드 뉴스 베이브스(Bad News Babes·나쁜 소식을 전하는 아가씨들이라는 뜻)’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연례 의회 여성 소프트볼 경기가 이날 열렸다. 입장 수익(1인당 관람료 10달러)은 40세 이하 젊은 유방암 환우들을 돕는 데 쓰이는 자선 경기다. 유방암 환자들의 희망을 상징하는 분홍색이 유니폼에서 두드러진 것도 그래서다. 양팀 선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선명한 분홍색 스포츠 양말을 신었다.

이 행사는 비슷한 시기에 민주·공화 남성 의원들 간에 벌이는 ‘연례 의회 야구 경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이아몬드 그라운드에서 글러브를 끼고 배트를 휘두르며 함께 땀흘리며, 입장 수익은 이웃을 위해 내놓는다는 점은 비슷하다.(야구 경기 수익은 지역 사회의 불우 이웃을 위해 기탁된다.) 하지만 남성 의원들의 야구 경기는 의사당에서 설전을 주고받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도 당 대 당으로 맞붙는데 비해, 여성 의원들의 소프트볼은 의원들이 당적을 떠나 한 팀으로 뭉쳐 기자들과 실력을 겨룬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평소에는 직구와 변화구를 넘나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때때로 불편한 얘기에 얼굴을 붉히던 의원과 언론인들이 유방암 환우 지원이란 공통된 목표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톰 에머, 테드 리우 민주당 의원 등 의원·언론 모두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에 온 남성 의원도 여럿 있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여성의원들이 26일 자선 소프트볼 경기 시작에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X(옛 트위터)

이날 의원팀 참가 선수 22명 중 민주당 소속이 15명, 공화당 소속이 7명이었다. 1루수로 출전한 캣 캐맥 공화당 하원 의원은 “이 게임은 생존자들과 여전히 투병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아주 사적인 경기이자 기분 좋은 행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주재 기자 출신으로 기자단 코치를 본 칼 헐스는 “이건 당파적인 게임이 아닌 우리 팀과 상대 팀의 대결(them against us)”이라며 “현실 세계의 긴장된 분위기를 조금은 깰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거의 매일같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이라 주장하는 에머 총무도 이날만큼은 민주당 의원들과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파이팅을 외쳤다.

이날 워싱턴 DC 일대에 비 예보가 있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경기 결과 기자팀이 의원팀을 9대4로 꺾었고, 통산 전적에서도 10승4패로 우세를 이어 나가게 됐다. 하지만 패자(敗者)는 없었다. 지난해보다 6만5000달러 많은 67만5000달러(약 9억3000만원)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이 경기를 통해 모금된 돈은 300만달러(약 42억원)가 넘는다. 이날 기자단 투수로 활약한 CNN ‘뉴스 센트럴’의 진행자 브리아나 케일러가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았고, 민주당 테레사 레거 페르난데스 하원 의원이 ‘가장 발전한 선수’로 선정됐다.

경기를 준비한 민주당 소속 데비 와서만 슐츠 하원의원,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모두 유방암과 싸워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젊은 여성들을 향해 “당신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언가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조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원팀 투수로 나선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암을 이겨낸 젊은 당신들이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또 고맙다”고 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밤늦게까지 뒤풀이 파티를 이어 가며 한데 어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