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을 4개월 앞두고 공화당의 ‘선거 컨트롤 타워’인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자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반영한 ‘당 강령(party platform)’을 채택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의회 전문 매체 더힐 등이 7일 보도했다. 그간 헤리티지재단 등 미 공화당 진영에서 마련해온 각종 ‘공약’ 등에 대해 거리를 둬왔던 트럼프 재선 캠프도 이날 강령이 트럼프의 의중을 반영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블룸버그는 “강령 초안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광범위하게 작성하고 편집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더힐이 입수한 16페이지 분량의 공화당 강령 ‘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강령은 “미국의 역사는 미국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용감한 남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며 “그간 미국 국민은 우리가 어떤 장애물도, 어떤 힘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수없이 증명해 왔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건국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영국을 물리쳤다. 20세기에 미국은 나치즘과 파시즘을 물리쳤고, 44년간의 냉전 끝에 소련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도 했다.

강령은 “그러나 지금 우리는 심각한 쇠퇴의 길로 접어든 국가”라며 “우리의 미래, 정체성, 삶의 방식이 전례 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과거의 모든 도전을 이겨내게 했던 미국 정신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미국을 위태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미국 민주당 정권이라고 이들은 밝혔다. “수십년간 정치인들은 불공정한 무역협상과 세계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우리의 일자리와 생계를 해외 입찰자들에게 팔아넘겼다”며 “우리의 국경이 (불법 이민자들로) 넘쳐나고 도시가 범죄로 점령당하고 사법 시스템이 무기화되고 젊은이들이 절망과 절망감을 키우도록 방치했다”고 했다. 공화당은 이어 “우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를 회복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 우리는 진실, 정의, 상식에 기반한 국가가 되겠다”고 했다.

◇첫째 강령이 인플레 종식, 두 번째는 국경 폐쇄

첫번째 강령으로 공화당은 ‘물가 조절’을 꼽았다. 강령은 “공화당은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가계 예산을 황폐화시키고, 수백만 명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좌절시킨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되돌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공화당은 지출을 억제하고, 과도한 규제를 줄이겠다고 했다. 또 미국 가정의 주거·교육·의료 비용을 상승시킨 주법인 불법 이민을 막겠다고도 했다.

두번째는 불법 이민 종식이다. 공화당은 “(트럼프 1 기 이후 중단됐던) 국경 장벽을 완공하고 첨단 기술을 사용해 국경을 감시하고 보호하겠다”고 했다. 이어 “현재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수천 명의 군대를 우리 남부 국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포함해 침략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사용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설 경우 국내 이민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의 미군 주둔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도 했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전 세계 범죄 조직과 불법 이민자들이 아무런 처벌 없이 미국을 돌아다니도록 허용한 민주당의 파괴적인 국경 개방 정책을 되돌리겠다”며 “공화당은 불법 외국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우리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추방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했다.

◇해외 제품 관세 부과, 전기차 전환 의무화 폐지, 에너지 정책도 전환

이어 “공화당은 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지지한다”며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당선하면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전기차에 대해선 “전기 자동차 의무화를 취소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부담스러운 규제를 줄이겠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지원 및 기타 명령 등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해선 석유 시추 증가 등 기존 에너지 개발을 강조했다.

공화당은 또 대중 정책과 관련해선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취소, 중국으로부터의 필수품 수입 단계적 중단, 중국의 미국 부동산 및 사업체 구매 차단 등 방침도 밝혔다.

◇낙태 문제는 유연…중도층 표 계산

당초 낙태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공화당이 이번 강령에선 입장을 대폭 누그러뜨렸다. 이는 트럼프가 낙태 논란으로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다.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를 지지한다는 기존 공화당 강령의 표현이 40년만에 삭제됐다고 AP는 전했다. 트럼프는 연방 정부 차원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대법원 파기를 이끌어 수십 년 간 유지돼 온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무너뜨렸다는 공세를 민주당으로부터 받고 있다.

공화당은 이번 강령에서 “우리는 가족과 생명을 자랑스럽게 지지한다. 우리는 미국 헌법 제14조는 어떤 사람도 정당한 절차 없이 생명이나 자유를 거부당할 수 없다”면서도 “주정부가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자유롭게 통과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했다. 일괄적으로 낙태를 금지한다는 기존 당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어 공화당은 “우리는 임신 말기 낙태에 반대하는 동시에 산모의 산전 관리, 피임 및 IVF(체외 인공수정) 같은 난임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트럼프도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엄마와 아빠들이 아기를 갖는 것을 더 쉽게 만들고 싶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여기에는 미국의 모든 주에서 IVF(체외 인공수정) 같은 난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포함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