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뉴스1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앞세워 오는 11월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노리는 미국 공화당이 ‘트럼프 2기’를 위한 핵심 정책의 근간을 적시한 정당 강령(綱領)을 8일 채택했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이날 채택한 강령 이름은 ‘미국 우선주의: 상식으로의 회귀’(America First: A Return to Common Sense)로 그동안 트럼프가 주장해온 내용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강령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며 초강경 국경 이민 정책을 공언했고, 해외 파병 미군을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에 배치할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주한 미군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군을 해외보다는 국내 국경 통제에 더 집중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강령은 동맹과의 안보 협력에 대해 “공동 방위의 의무를 확실하게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미국의 일방적 지원은 없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한국에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선 공식 출정식’으로 치러질 전당대회는 오는 15~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다. 지난달 TV 토론 이후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이 불출마 가능성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트럼프 2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이 입수한 16쪽 분량의 초안에 따르면 강령은 “미 국민은 어떤 장애물도, 어떤 힘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수없이 증명해 왔지만 지금 미국은 (민주당) 정치인들 때문에 심각한 쇠퇴의 길로 접어든 국가”라는 개탄으로 시작하며 20개 항목에 걸쳐 ‘집권 플랜’을 소개했다.

그래픽=양진경

강령은 몰려드는 이민·난민 신청자로 혼란에 빠진 남부 멕시코 국경 안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 범죄 조직과 불법 이민자들이 아무런 처벌 없이 미국을 돌아다니도록 허용한 민주당의 파괴적인 국경 개방 정책을 되돌리겠다. 불법 체류 외국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우리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추방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1기’ 때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방침도 공식화했다. “(트럼프 1 기 이후 중단됐던) 국경 장벽을 완공하고 첨단 기술을 사용해 국경을 감시하고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강령은 이어 “현재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 수천 명을 남부 국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포함해 침략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사용하겠다”고도 했다.

강령은 최근 미국 서민들이 겪는 생활고의 원인을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돌리면서 집권 시 강력한 물가 조절 정책을 펴겠다고 예고했다.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가계 예산을 황폐화시키고, 수백만 명의 ‘내 집 마련’ 꿈을 좌절시킨 최악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되돌리겠다. 지출을 억제하고 과도한 규제를 줄이겠다”고 했다. 미국 가정의 주거·교육·의료 비용을 상승시킨 주범으로 불법 이민을 거론하며 초강경 이민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강령은 트럼프 1기 당시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며 중국과 ‘무역 전쟁’을 불붙였던 ‘미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도 그대로 이어 가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지지하며,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의 최혜국 지위를 박탈할 경우 중국산 수입품에 더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게 돼 미·중 무역 전쟁은 격화할 수밖에 없다. 앞서 트럼프는 재선할 경우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었다. 전기차 보급 확대 등 민주당의 친환경 정책의 폐기 방침도 공식화했다. 반면 낙태 문제에서는 보수적 입장에서 대폭 후퇴했다.

국제 안보와 관련, 강령은 동맹에 대한 일방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강령은 “우리의 동맹들이 공동 방위에 대한 투자의 의무를 확실하게 이행하도록 하고 유럽의 평화를 복구해 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주력해온 바이든 행정부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동 문제에 대해선 “(하마스 격퇴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 편에 서서 평화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강령에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강하고 주권적이며 독립적인 국가들을 지지하며, 다른 국가와 평화와 무역을 통해 번영할 것”이라는 부분이 있지만, 한국이나 한반도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다.

미 정부 소식통은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한 군사 비용 부담을 꺼리는 트럼프 진영은 그간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며 “’주권’ ‘독립’ 등의 표현은 한·일 등이 자력 방어에 더 많은 비용을 쏟아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타임 인터뷰에서 한국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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