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속내를 감추기 어려운 한 유럽국 지도자의 변화무쌍한 얼굴에 미국 네티즌들이 열광하고 있다. 전세계 자유·민주 진영 지도자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9~1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씬스틸러’로 등극한 조르자 멜로니(47) 이탈리아 총리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각하면서 회의가 상당 시간 지연됐는데, ‘지금이 도대체 몇시냐’는듯 손목을 가리키며 눈알을 굴리는 멜로니의 모습이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viral)’하게 퍼졌다.
11일 오전 10시 예정됐던 정상회의는 바이든이 백악관을 20분이나 늦게 출발하면서 40분 지연됐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알렉산더 스텁 핀란드 총리와 대화를 나누던 멜로니는 눈을 굴리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손목을 가리켰다. 뉴욕포스트는 “그녀와 다른 세계 지도자들이 (바이든의 지각에)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며 “이후 카메라가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달 이탈리아 파사노에서 열린 G7(7개국) 정상회의 때도 바이든이 행사장에 가장 늦게 도착하자 멜로니가 “여자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지각한 바이든에 대한 멜로니의 불편한 감정은 전날인 10일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여과없이 감지됐다. 바이든이 멜로니의 손을 잡고 왼쪽 팔을 만지며 가까이 다가가려하자 멜로니가 45도 가까이 몸을 뒤로 젖히며 저항하는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과거 공식 석상에서 같은 당 여성 정치인이나 동료 의원들의 가족에게 과도한 신체 접촉을 해서 종종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바이든에 비판적인 미국 유권자들은 이런 멜로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영상을 퍼나르며 “조는 정말 섬뜩하다” “멜로니가 우리가 하고 싶은 반응을 해줬다”고 했다.
국제무대에서 멜로니의 표정과 행동이 화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G7 회의 때 1977년생 동갑내기 국가지도자인 멜로니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놓고 한바탕 설전(舌戰)을 벌였다.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정도였는데 당시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주최한 G7 정상 환영 만찬에서 멜로니가 마크롱에게 보낸 쌀쌀한 시선이 큰 화제가 됐다. 여기에는 “좀처럼 경멸을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보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멜로니는 이탈리아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1992년에 정계에 입문, 최연소 장관(청소년부)을 거쳐 2022년 10월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취임 전엔 강경 보수로 분류되며 ‘여자 무솔리니’란 얘기도 들었지만, 집권 후엔 온건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난달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강경 보수가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서 EU 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G7 정상 중에서도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바이든, 총선 패배로 레임덕 위기에 직면한 마크롱 등과 달리 국내 정치적 입지가 가장 안정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