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 중 총격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오른쪽 귀쪽을 만지고 단상 뒤로 주저앉는 모습. 그는 이후 일어나 미 비밀경호국의 경호 속에 주먹을 휘두르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유튜브

해가 지지 않은 13일 오후 6시 5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서부 도시 버틀러의 유원지 ‘버틀러 팜 쇼’에 마련된 유세장. 공화당원의 애창곡인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가 울려 퍼지고, 지지자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자신의 선거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연설 시작 10분쯤 뒤 “정말 슬픈 일을 보고 싶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보자”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려던 찰나 ‘따다닥’ 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트럼프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오른쪽 귀와 목 뒤를 만진 다음 단상 아래로 몸을 피했고 비밀경호국 소속 요원들이 황급히 단상으로 올라왔다. 어리둥절해하던 유세장 청중은 다시 총소리가 들려오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트럼프는 1분 정도 지난 뒤 자신을 에워싼 요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나 대피했다. 얼굴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고 옷차림은 헝클어져 있었다. 1981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이후 43년 만에 발생한 미국 전·현직 대통령 총격이었다.

트럼프는 “신발 좀 신읍시다”고 했고, 요원들이 자신을 옮기려 하자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반복해 “싸우자(Fight)”고 외쳤다. 공포에 질려 있던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USA·미국)’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날 트럼프를 겨냥해 총을 발사한 총격 용의자 토머스 매슈 크룩스는 현장에서 비밀경호국 요원들에게 사살됐다. 총격범은 유세장에서 130m 떨어진 건물 옥상에 올라가 AR-15 소총으로 저격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발사한 총탄은 모두 8발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유세에 참석한 지지자 한 명은 사망했고 다른 두 명은 중태라고 수사 당국은 밝혔다. 펜실베이니아주 상원 의원 공화당 후보인 데이브 매코믹은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맨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내) 뒤에 있던 사람이 총에 맞은 것 같았다”며 “(주변에) 피가 많이 흘렀다”고 했다.

트럼프 유세장에선 귀에 무전 이어폰을 낀 정부 요원들과 군인들이 무장한 채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트럼프는 비밀경호국 및 국토안보부 소속 교통안전청 요원, 주 방위군 등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유세에 참석하려면 서너 시간은 줄을 서야 한다. 모든 참석자가 철저한 검문을 거치기 때문에 입장 절차가 느릴 수밖에 없다. 유세 참석자 전원이 금속 탐지기로 몸 수색을 받고, 위험 물질이나 큰 가방 등은 반입 금지다. 이런 삼엄한 경호 체계를 뚫고 피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총격을 가한 남성으로 추정되는 청년이 13일 트럼프 유세장 주변 건물 위에 엎드려 총기로 조준하고 있는 모습.미국 인터넷 매체 TMZ가 입수해 공개했다. /TMZ.com

특히 주변 건물에 올라가 저격을 시도한 총격범의 동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유세장에 있던 남성 그레스 스미스는 영국 BBC에 “트럼프 연설 시작 전 50피트(약 15m) 떨어진 건물 지붕으로 총을 가진 남자가 곰처럼 기어올라가는 걸 보고 경찰에 (대처해달라고) 손짓을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엑스에 “비밀경호국 수장과 이번 경호 총책임자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유세 당시 고개를 조금 돌리는 바람에 치명상을 피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세에 참석했던 버네사 애셔는 NBC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때마침 (불법 이민 관련) 차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을 것”이라고 했다.

불의의 피격 사건을 계기로 전·현직 대통령 간 거친 충돌은 일단 수면 위로 잦아드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사건 발생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다. 총격 사건에 신속하게 대응해준 비밀경호국과 모든 법 집행 기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그는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와 총소리를 들었고, 총알이 피부를 찢는 것을 즉시 느꼈다는 점에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고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고 후 성명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아내) 질과 나는 그(트럼프)를 안전하게 대피시켜 준 비밀경호국에 감사하고 있다”며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서 단결하여 이를 규탄해야 한다”고 했다. 별장에서 주말을 보내려던 바이든은 사건 발생 소식에 백악관으로 조기 복귀했다.

그래픽=김하경

☞비밀경호국

미국 전·현직 대통령의 경호를 전담하는 연방 기관. 1865년 설립됐을 때 핵심 업무는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위조화폐 단속이었다. 그러나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재임 중 암살되면서 체계적인 경호 기관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돼 법령이 개정되고 예산이 배정, 경호 기능도 맡게 됐다. 요인 경호 외에 금융·사이버 범죄 수사와 대테러 업무 기능도 있다. 설립 초기에는 재무부 소속이었지만, 2003년 국토안보부 소속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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