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제16회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패널들이 '중국의 도전'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드미트리 세바스토풀로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차관, 안자 마누엘 아스펜전략그룹 총괄 디렉터, 에릭 슈미트 전 백악관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장. /아스펜연구소

“우리는 공격을 하면서 수비도 해야 한다. 미국 기업들이 모방을 당해놓고도 중국에서 여전히 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잉 항공기도 팔고, 군용이 아닌 이상 상업용 항공기에 들어가는 부품도 수출했으면 좋겠다. (중국에 대한 규제와 통제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을 생각하며 국가 안보에 관한 더 큰 것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산업안보담당 차관은 16일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아스펜안보포럼(Aspen Security Forum)’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1946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 아스펜연구소가 인구가 6000명 안팎이고, 맥도날드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개최하는 이 포럼은 올해로 15번째를 맞았다. 매년 전 세계의 정책 입안자와 학계·언론계 인사 500명이 모여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당대의 질문들을 놓고 나흘 간 열띤 토론을 벌인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며 굳이 이 곳까지 모이는 데에는 “머리를 비우고 당파와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순수한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도 있다고 한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록히드마틴 등 굴지의 기업들이 이번 포럼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에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 등 미국의 리더십이 총집결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며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격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중국의 부상과 견제에 있었다.


◇ “中 발목 잡거나, 中보다 더 빨리 달리거나 둘 중 하나”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차관이 16일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 참석해 대화를 하고 있다. /아스펜연구소

에스테베즈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장비 통제 등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창했고 바이든 정부 대중(對中) 전략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스몰 야드, 하이 펜스(A Small Yard with High Fence)’ 개념을 앞장서서 구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중국에 대한 공격이 미국 경제에 대한 부메랑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범위는 좁히되 강도는 높이자는 개념이다. 에스테베즈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걸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어느 작은 마당”이라고 했다.

에스테베즈는 “중국이 많은 역량을 갖췄고 정부 보조금을 잘 활용하는 등 기꺼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며 “우리가 통제하려는 건 특정 수준의 특정한 제조 장비”라고 했다. 이어 “100점짜리 반도체보다는 못 하지만 괜찮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곳들을 많이 찾고 있다”며 “우리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에스테베즈는 “반도체 생태계에 이해가 걸려 있는 동맹국들이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보복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다자적 의미에서 협력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고급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 능력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지 확인도 하고 있다”고 했다.

에스테베즈는 상무부가 ‘데이터 유출, 국가 안보 위협 가능성’이 있다 지목한 커넥티드 차량에 대해선 “8월쯤 규칙을 발표할 것”이라 했다. 중국 및 기타 국적으로 간주되는 국가에서 만드는 일부 소프트웨어에 제한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는 매우 무서운 존재고 여러분이 누구와 전화하고 어디로 가는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자동차 전체가 아닌 일부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와 자동차 주변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차량의 핵심 구동 부품 일부는 우리나라와 동맹국에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중국산 차량에 대한 여태까지 나온 정부의 가장 격정적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아스펜전략그룹의 마누엘 안지 총괄 국장은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세계를 선도한다”며 “지난 몇 년 간은 미국과 우방이 확실한 기술 지배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 경쟁에서 중국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경쟁에서 우리와 동맹국이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며 “경주에서 이기려면 방법은 상대방의 발목을 잡거나, 우리가 스스로 더 빨리 달리는 2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장을 지낸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는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 특히 벤처캐피털의 투자 금액이 엄청나게 감소했고 바이트댄스(틱톡의 중국계 모기업)를 제외하면 표준이 될 글로벌 플랫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상태”라고 했다. 이날 슈미트가 바이트댄스 얘기를 할 때 돌연 천둥 번개가 쳐 “누군가는 이에 대해 불만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사회자가 “중국 공산당이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더 큰 문제”라고 말해 청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 “中, 우주 분야서 美대체하는 게 목표… 맞춤형 ‘킬 웹’ 구축”

스티븐 화이팅 미 우주군 사령관이 17일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아스펜연구소

경제·산업은 물론 외교·안보 분야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우주에서의 중국 견제 방안도 논의됐다. 미 국방부 직속 정보기관인 국방정보국(DIA)의 제프 크루스 중장은 “중국은 우주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미국을 대체하고, 우리에게 해로운 방식으로 우주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 전자전, 대위성 능력의 엄청난 증가, 비궤도 기술 등은 모두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이 군사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우주를 어떻게 방어할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2019년 우주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공군 우주사령부를 승격시켜 우주군을 창설했다.

초대 우주군 사령관인 스티븐 화이팅 장군은 “중국은 지난 6년 동안 궤도를 돌고 있는 정보·감시·정찰 위성의 숫자를 세 배로 늘렸고, (이 위성들은) 고정 표적을 찾아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미군, 동맹군과 잠재적으로 교전하도록 설계돼있다”며 “고정 궤도 표적을 찾기 위해 우주에서 맞춤형 킬 웹(거미줄처럼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해 최적의 타격수단을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체계)을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수백 년 역사를 갖고 있고, 강력한 인프라를 갖춘 공중·해양·지상 영역과 달리 우주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가 없다”며 “우주를 무대로 하는 중국·러시아의 군사력에 맞서 연합군을 보호해야한다. 우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쟁을 계획하는 건 전쟁을 억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 “유학생 30만명 대 1만5000명… 中 알아야 원하는 결과 얻어”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이 16일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아스펜연구소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갖기 위해 인적 자원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 지낸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 전역의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이 30만 명이나 되는데 중국에서 공부하는 미국인 유학생은 1만 5000명 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엄청난 격차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중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에스테베즈는 “워싱턴의 반중(反中) 수사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중국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비건도 “중국에서 공부하면 미국 정부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없을 것이란 잘못된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비건은 “중국에서 트럼프 얘기를 얼마나 자주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라며 “트럼프의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본인들에게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생각이 있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중국과 교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면서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이 중국과 거래를 포기한 것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건은 “중국은 현재 약간의 잘못만 해도 후과(後果)가 심각할 것이란 생각에 가만히 앉아 자신들의 ‘중대 이익’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우리에게 좋은 대중 정책은 억제, 경쟁, 참여 세 가지”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파트너, 동맹국과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하고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대중 정책에 있어 동맹과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17일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조셉 나이 의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아스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