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화당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급속히 결집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에 새로운 악재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바이든의 정치적 우군(友軍)이자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민주당 상·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도 바이든 회의론으로 돌아서면서 더욱 코너로 몰리는 모습이다.
백악관은 이날 “대통령이 확진 후 코로나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투여받고, 델라웨어주 레호보스비치의 별장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2022년 7월 이후 2년 만의 재확진이다. 주치의 메모를 보면 바이든은 오후부터 콧물·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보였다. 주치의는 “증상이 경미하게 남아있고 호흡, 체온, 산소포화도 등은 정상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바이든은 이날 히스패닉 단체 주최 행사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찾았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용기 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고 다소 힘겨워하는 듯한 모습도 언론에 포착됐다. 같은 날 공개된 한 방송 인터뷰에선 “만약 의사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말한다면 완주 의사를 재고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확진이 알려진 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바이든과의 단독 회동에서 후보 사퇴를 요구한 사실도 전해졌다. ABC뉴스는 “슈머가 ‘후보직 자진 사퇴가 국가와 민주당을 위해 더 공헌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바이든에게 허심탄회하게 전달했다”고 했다. 이 만남은 트럼프 피격 전 바이든의 별장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역시 11일 백악관에서 바이든과 만나 퇴진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액시오스는 17일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펠로시도 바이든 캠프에 바이든이 후보직을 유지할 경우 당이 직면하게 될 정치적 위험에 대해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펠로시가 바이든에게 ‘당을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솔직한 의견 전달을 했다”는 정치 매체 폴리티코 보도도 나왔다.
의회 지도부·원로이자 바이든의 오랜 우군인 세 사람은 당내 ‘후보 교체’ 여론의 향방을 좌우할 키맨들로 꼽혔다. 그만큼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달 TV토론 참패에도 바이든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의원들의 공개 사퇴 요구가 이어지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펠로시 측근인 애덤 시프 하원의원도 이날 “사퇴 결정은 바이든의 몫이지만, 나는 그가 횃불을 넘길 때라고 믿는다”고 말해 공개 후보 사퇴를 요구한 19번째 민주당 인사가 됐다. 11~15일 미국의 성인 1253명을 대상으로 한 AP·시카고대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지지층의 65%가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바이든 교체론이 갈수록 힘을 받는 모습이 되면서 민주당 일정도 꼬이고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화상 대의원 투표를 다음 주에 실시해 바이든을 후보로 확정하려던 계획을 전격 철회하고 일정을 8월 첫째 주 이후로 연기했다. 계획대로라면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다음 달 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확정된다. 그런데 오하이오주는 자체 규정에 따라 이보다 2주 전인 다음 달 7일 대선후보 등록을 마감한다. 이렇게 되면 11월 대선에서 오하이오주 대선 투표용지에 민주당 후보가 아예 표시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오하이오는 이번 대선 최대 경합지 중 한 곳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바이든을 이달 안에 후보로 먼저 확정하려고 했지만 당내 반발 여론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이 자가 격리에 들어간 앞으로 일주일 동안 흘러가는 여론에 따라 진퇴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