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D.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이 17일 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우리 일자리는 외국으로 빠져나갔고, 우리 아이들은 전쟁터로 보내졌습니다. 오하이오·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와 우리나라의 변두리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합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절대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낙점돼 11월 미국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J.D. 밴스(Vance·40)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 사흘째인 17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국익과 미국 노동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그는 부통령 후보 자격으로 연단에 올랐지만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와 전당대회 개최지인 위스콘신,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등 이른바 러스트벨트(제조업 쇠퇴 지역)를 특히 비중 있게 언급했다. 자신이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흙수저’ 출신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선 최대 경합주인 이들 주의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 표심을 적극 공략했다.

33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밴스는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을 다섯 차례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의 비전은 매우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하다. 우리는 노동자에게 헌신하겠다”고 했다. 이어 “외국 노동력 수입 대신 미국인과 그들의 좋은 일자리·임금을 위해 싸우겠다”며 “아름다운 (미국의) 노동력으로 더 많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USA)’ 상품을 찍어내자”고 했다.

밴스는 2016년 출간된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 유명해진 자신의 입지전적인 성장 스토리를 언급하면서 “오늘 밤 내가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은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재건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대표하고 있고, 이번 선거에 패배한다면 그 희망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외 정책과 관련해서 밴스는 강력한 트럼프식 고립주의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은 우리 동맹이 세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예산을 분담하도록 확실히 하겠다. 미국 국민의 자비를 배반하는 무임승차 국가(free-riders)는 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나라에는 싸구려 중국 물건과 저임금 외국 노동자들로 넘쳐났고, 치명적인 중국산 펜타닐(마약성 진통제)까지 넘쳐난다. 조 바이든이 망쳐놓은 대가를 우리 공동체가 치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 노동자의 임금을 보호할 것이며 미국 시민을 등에 업고 중국 공산당이 자국 중산층을 구축하는 것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중국이고,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책임이라는 취지다.

앞서 전당대회 첫날인 15일 부통령 후보로 발표된 밴스는 이날 수락 연설을 통해 중앙 정치 무대에 본격 데뷔했다. 그가 연단에 오르는 동안 미국의 전설적 컨트리 가수 멀 해거드의 노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가 흘러나왔다. ‘이라크(전쟁)에서 빠져나와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자. 그리고 미국을 먼저 재건하자’는 내용의 가사에 지지자들이 이름 ‘제이디(J.D.)’를 외치며 환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맏손녀 카이 트럼프가 17일 미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연설한 뒤 퇴장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연설할 때 불같은 수사(修辭)로 유명한 밴스는 이날 평소보다 어조나 표현이 훨씬 차분한 모습이었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전당대회 마지막 날 트럼프의 후보 수락 연설을 하루 앞두고 자신을 더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대의원에게 배포한 플래카드에도 ‘힘을 통한 평화’ ‘아메리카 퍼스트’ 등 덜 공격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NBC는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 캠프가 주요 연사들의 연설문을 온건하게 수정하고 있다. 정치적 공격 발언의 강도를 낮추고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피격 사건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트럼프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중도층 외연 확장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분석됐다.

다만 ‘트럼프 1기’ 시절 그를 보좌했던 경제·안보 책사들은 잇따라 연사로 나와 바이든을 공격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국(DNI) 국장 직무대행 등을 지낸 리처드 그리넬 전 주(駐)독일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 아래 우리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전쟁은 없었고 오래된 전쟁은 끝났다”며 “그러나 바이든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고 했다.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마약 카르텔, 인신매매범들, 테러리스트들,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훔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엔 트럼프의 가족들이 연단에 올라 지지를 호소했는데, 가장 주목받은 연사는 맏손녀 카이 매디슨 트럼프(17)였다. 카이는 “그(트럼프)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할아버지일 뿐”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몰아넣었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우뚝 서있다”고 했다. 대형 스크린엔 카이의 연설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트럼프의 모습이 수차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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