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4월 미 워싱턴 DC 주미 대사관 외교관 신분으로 나온 국정원 요원이 3450달러 상당의 루이비통 핸드백을 구매한 뒤 수미 테리(왼쪽) 연구원이 자리를 뜨는 모습. 미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들은 대사관 번호판이 붙어있는 차량을 함께 타고 떠났다"고 했다. /미 연방검찰 공소장

한국 정부를 위해 불법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53)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서훈 국정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17일 나타났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간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한달 여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당시 테리 등 미 전문가들을 동원해 트럼프 정부 고위급에 접근, 문 정부의 외교 의제를 밀어붙이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전날 공개된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는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테리를 기소한 미국 검찰은 공소장에서 “2019년 1월 테리가 주선해 그가 근무하고 있던 싱크탱크에서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 전직 고위 정보 관리 등이 참석한 소규모 미팅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 측에서는 서훈 국가정보원장(2017년 6월~2020년 7월 재임)과 국정원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서 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두 사람의 관계를 포함한 북한 정책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고 한다. 국정원에서 서 국장 방미(訪美)를 한 달 앞두고 테리에게 전화를 걸어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을 요구했고, 참석을 원하는 미 당국자 명단까지 만들어 건넸다고 한다.

서훈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에 임명된 이후 미·북과 ‘물밑 협상’을 가동하며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 성사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당시 서 전 원장이 미국 측에 북한의 입장을 대신 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문 정부는 미국 측에 북한이 선의로 핵·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대화’를 설득했었다.

서훈 전 국정원장. /뉴스1

이 자리에 참석했던 미 고위 당국자들은 이후 FBI(연방수사국) 조사에서 “싱크탱크에 초대된 자리에서 외국의 정보 수장을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주 이상한(highly abnormal) 미팅이었다”고 했다. 이날 만남이 있은 후 국정원 관계자는 테리에게 문자를 보내 “잘 주관해준 덕분에 만남이 만족스럽게 이뤄졌다”고 했다. 검찰은 “몇달 후 이 직원이 2854달러 짜리 코트, 2950달러 짜리 핸드백을 선물하며 테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17일 이번 사건에 대해 “아직 진행 중인 법 집행 사안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면서도 “외국인대리등록법(FARA)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려 온 사람들을 접촉할 때 그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자신들을 대표하는지, 외국 대표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이게 법이 제정된 이유고 법무부가 법을 집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밀러는 이번 사안을 한국 정부와 논의했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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