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사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주요 외신이 18일 전했다. TV 토론 참패 뒤 분출하는 사퇴 요구를 일축해 온 그가 스스로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이 조만간 중도 하차를 발표하리라는 전망(한국 시각 19일 오후 6시 50분 현재)도 계속 나오고 있다.

로이터는 이날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 중도 하차 문제를 놓고 자아 성찰을 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 의장이 민주당 동료 의원들에게 ‘조만간 대통령이 후보에서 물러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바이든이 사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는 WP 보도도 나왔다.

바이든은 지난달 27일 대선 상대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벌인 양자 TV 토론에서 참패한 후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거센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당시 토론에서 바이든은 말을 더듬거나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 등을 자주 보이는 바람에 나이와 인지력 논란이 커졌다. 바이든은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대선 완주 의사를 고수했지만, 해명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말실수를 되풀이해 여론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바이든은 지난 17일 2년 만에 코로나 재확진으로 자가 격리에 들어가 고령이라는 약점이 재부각됐다.

바이든이 물러날 경우 러닝 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올라가고 새로운 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쪽으로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다.

지난 11일 워싱턴DC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결산하는 기자회견 때만 해도 바이든은 “내가 대통령으로 출마하기에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난 그(트럼프)를 한 번 이겼고, 다시 이길 것”이라며 재선 도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고령과 인지력 논란에 관한 빗발치는 질문에 “의사가 내 건강 상태가 좋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약간 지혜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되받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조차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이라고 부르고, 앞서 열린 정상회의 행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국(敵國) 대통령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칭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러 오히려 교체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수그러들지 않는 건강·인지력 논란으로 진보 성향 언론에 이어 현역 민주당 의원과 고액 기부자, 그리고 바이든을 편들던 당내 유력 인사들까지 잇따라 돌아서자 바이든은 결국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미 언론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르면 이번 주말에 바이든이 최종적으로 ‘물러날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분출하는 후보 교체론에도 꿈쩍 않던 바이든을 흔들리게 한 것은 정치적 동지이면서 민주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정치 거물, 오바마와 펠로시의 ‘변심’이라는 분석이다. 바이든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델라웨어주 별장에서 자가 격리된 바로 다음 날인 18일 WP는 “오바마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고 시사하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바이든 퇴진 여부에 대해 어떤 의견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바이든 지지자들 사이에선 사퇴론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 후임자를 뽑는 2016년 대선 때 8년간 자기를 보좌한 부통령 바이든의 출마를 만류하고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승리한 바이든은 “내가 트럼프를 이긴 유일한 사람인데 오바마 한 명만 출마를 말렸다”며 주변에 섭섭함을 드러냈다고 알려졌다. 지난 10일 배우 조지 클루니가 뉴욕타임스에 바이든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기고하기 전날 연락했을 때도 오바마는 딱히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바마에 앞서 ‘바이든 사퇴론’의 불을 지핀 사람은 펠로시였다. 펠로시는 바이든이 나토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인 10일 MSNBC에 출연해 “남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가 (대선 출마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보다 두 살이 많은 펠로시는 오랜 세월 바이든과 의회에서 호흡을 맞추며 정치 여정을 함께해 온 우군(友軍)이다. 이런 펠로시까지 바이든의 사퇴 가능성을 언급하자 미 정가에서는 바이든의 사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왔다.

펠로시의 발언 이후 의회 내 민주당 1인자인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역시 지난주 바이든과 따로 만나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한 사실이 속속 공개됐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에 코로나 재확진 소식은 치명타가 됐다. 바이든이 라틴계 주민들의 권익 단체인 ‘우니도스US’에서 연설하기 위해 경합주인 네바다까지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고 긴급하게 돌아가는 모습에 고령이라는 부담 요인이 다시 부각됐다.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에서 벌어진 트럼프 피격 사건도 바이든이 사퇴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오른쪽 귀에 총알을 맞고도 두 다리로 일어서 피가 얼굴에 흥건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드는 트럼프에게 맞서 바이든이 국면 전환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계속 버티다 대통령직과 의회를 다 잃어버리면 정권의 업적마저 잊히게 될 것이란 우려가 심경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바이든이 대선에 뛰어들면서 당초 약속대로 ‘4년짜리 대통령’에 충실했다면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면서 “젊은 세대 민주당 지도자들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후보가 되겠다”며 ‘단임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이후 마음을 바꿔 재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재선을 추진하고 후보로 확정된 현직 대통령이 나이와 인지력 논란으로 물러나는 일은 미국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1968년 대선 경선에서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이 유력 주자로 떠올랐지만 그해 6월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1972년엔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톰 이글턴이 전당대회가 끝난 뒤 건강 문제가 불거져 교체된 적이 있다. 모두 민주당에서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