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데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입장을 선회해 간접적으로 퇴진을 요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바이든이 1942년생, 오바마가 1961년생이다. 두 사람은 19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 때 부통령과 대통령으로 호흡을 맞추며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의미하는 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8년 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오바마가 바이든의 선거 출마를 주저앉히는 모양새가 됐다.

바이든이 TV토론 참패에도 경선 완주를 고집한 가운데, ‘후보 교체론’에 불이 붙은 건 오바마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간접적으로 후보 교체의 필요성을 얘기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오바마는 바이든 퇴진 여부에 대해 어떤 의견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바이든 지지자들 사이에선 사퇴론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 후임자를 뽑는 2016년 대선 때 8년간 자기를 보좌한 부통령 바이든의 출마를 만류하고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의원들의 잇단 퇴진 요구 뒤에는 오바마가 있고, 그가 꼭두각시를 흔드는 사람이라 생각해 격앙됐다”고 했다. 진보 진영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오바마의 입장 선회는 결정적이었고, 바이든은 한 주도 못넘기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바이든은 2016년 대선에 나가지 못한 것 관련 주변에 오바마에 대한 섭섭함을 종종 드러냈다. 미 정치권을 강타했던 로버트 허 특검의 녹취록에도 바이든이 “대통령(오바마)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뛰라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힐러리는 이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는데 바이든은 “내가 나갔으면 2016년 선거에서 이겼을 것”이라고 했다. 4년 뒤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는 했지만,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은 오바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던 것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바이든 측근과 오바마 정부 출신 인사들이 갈등을 빚는다는 보도도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다. “오바마 쪽 사람들이 바이든의 의회·외교 경험을 잘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레거시(legacy)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든 측의 불만이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뒷쪽)이 2017년 1월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오바마의 성명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보다 약 40분 정도 늦게 발표됐고, 오바마가 클린턴과 달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대선 후보로 지지하지 않은 점을 놓고도 무성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퇴진 발표를 앞두고 클린턴과는 사전 조율이 이뤄진 반면, 오바마와는 소통이 부재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성명 곳곳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바이든 정부가 이룬 성과를 하나 하나 언급하며 “해리스를 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오바마는 “오늘 우리는 바이든이 최고 애국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면서도 차기 후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바마가 막후에서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 등과 후보 교체에 관한 의견 교환을 한 반면, 클린턴 부부는 직전까지 바이든 완주를 고집하며 고액 기부자들을 상대로 전화까지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는 “바이든은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장 중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며 “그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평생 싸워온 모든 것과 민주당의 모든 것이 어떻게 위험에 처하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했다. 이어 “이는 바이든의 나라 사랑에 대한 증거이며 미국 국민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진정한 공직자의 역사적 사례로, 미래 세대 지도자들이 잘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우리는 앞으로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게 될 것”이라며 차기 후보로 특정인을 언급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