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디트로이트 유세를 위해 델라웨어주 도버의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82) 대통령이 21일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TV 토론 부진 후 진보 진영 안팎의 사퇴 요구 압박을 받은지 약 3주 만이다. 바이든은 사퇴하면서 카멀라 해리스(60) 부통령을 대선후보로 공식 지지(endorse)한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날 성명에서 “재선 도전을 하려했지만 우리 당과 나라를 위해서는 내가 도전을 포기하고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바이든의 사퇴 결정은 11월5일로 대선을 불과 107일 앞두고 이뤄졌다. 경선을 치른 현직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미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사퇴) 결정으로 민주당의 새로운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며 “경선 단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후보가 결정되는 건 여러 세대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유력한 대체 후보로 거론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거론하고 “해리스가 가장 강력한 위치에서 경선 과정을 시작하지만 다른 민주당 후보들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바이든은 “국민 여러분의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어서 엄청난 영광이었다”며 “나의 재선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일에게 감사하고, 특히 굉장한 파트너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유권자들을 향해서도 “보내준 성원과 신념에 마음 깊히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바이든은 별도로 X(엑스)에 올린 글에서 “오늘 나는 카멀라가 올해 우리 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자 한다”며 “민주당원 여러분, 이제 함께 힘을 합쳐 트럼프를 이겨야 할 때다. 해내자”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사퇴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낸 성명.

그는 “지난 3년 반 우리는 국가로서 위대한 진보를 했다”며 “오늘 날 미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여러 역사적인 투자가 이뤄졌다”고 했다. 30년 만에 첫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고, 미국인들을 상대로 건강 보험 혜택을 확대하고, 최초로 연방대법관에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을 임명한 것 등을 정권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미국은 오늘날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고 했다.

바이든은 “이번 주 나의 결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재확진 판정을 받은 바이든은 현재 델라웨어주 레호보스비치 별장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백악관 주치의는 전날 “치료제를 투여했고 컨디션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바이든은 25일 미국을 방문하는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배우자인 질 바이든 여사는 이날 파리올림픽 참석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바이든은 지난달 대선 후보 TV토론 참패 후 당 안팎에서 ‘후보 교체론’이 불거진 지 3주째 되는 이날 재선 도전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은 인지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고집해왔다. 하지만 피격 사건 이후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 내 측근이자 정치 거물들이 잇따라 ‘후보 교체’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재선 도전의 뜻을 접게됐다.

CNN은 바이든이 후보 사퇴 사실을 백악관과 선거 캠프에 공개 직전에 알렸다고 보도했다. CNN은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서한이 공개되기 직전 사퇴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위 선거 캠프와 백악관 팀에 알렸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바이든이 지난 며칠 동안 이 문제를 숙고해왔다”고 했다. CNN은 “한 바이든 보좌관은 이번 발표가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 돼 많은 직원들이 놀라워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썼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직을 승계해 11월 대선에서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다.

버락 오바마(오른쪽) 전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모금 행사에 참석해 바이든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오바마는 당시까지만 해도 바이든 대선 레이스의 지지자였지만 지난달 말 TV 토론 참패 후 용퇴를 요구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알려졌다. /AFP 연합뉴스

전날까지 민주당 내 의원 37여명이 공개 사퇴를 요구하고 큰손들이 기부 중단을 협박해도 꿈쩍 않던 바이든의 사퇴 결정엔 진보 진영에서 존재감이 큰 오바마·펠로시가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졌다. 바이든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델라웨어주 별장에서 자가 격리된 바로 다음 날인 18일, 오바마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바이든이 출마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가 나왔다.

바이든 사퇴가 발표되자마자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 글에서 “부패한(crooked) 조 바이든은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없었고,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한 적도 없다”며 “그는 거짓말과 가짜 뉴스 등을 통해서만 대통령직을 유지해왔다”고 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사퇴하면서 민주당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명한 데 대해 CNN에 출연해 “바이든보다 해리스를 이기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의 후보직 사퇴 소식이 들려오자 공화당 진영에서 바이든의 ‘대통령직 사퇴’도 주장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은 후보직 사퇴에 따라 이번 대선엔 출마하지 않지만 내년 1월20일 정오까지는 대통령직 임기를 수행한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엑스 글에서 “바이든이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또한 없다”고 했다. 스티브 데인스 공화당 상원의원도 “대통령직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며 “나는 더 이상 바이든이 국가 원수로서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국가 안보를 염려해 공식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사임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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