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세력이 승리하려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서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서면 매우 간단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기고 그들은 진다는 겁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 미 연방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뒤로 공화당 마이크 존슨(왼쪽) 하원의장과 민주당 벤 카딘 상원의원이 서 있다. 당초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존슨 의장 오른쪽에 있어야 하지만 이날 해리스는 대선 유세를 이유로 불참했다. /로이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 미국을 방문해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 나섰다. 지난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네타냐후가 방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지지에 대한 감사를 보내면서 전투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이날 54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우리는 오늘 역사의 교차로에서 만난다. 우리 세계는 격변하고 있다”며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마스의) 공격은 하루에 (2001년) 9·11테러 20건이 발생한 것과 맞먹는다”고 했다. 그는 “(하마스가 공격했던) 작년 10월7일은 1941년 12월7일(진주만 공습)과 2001년 9월 11일(9·11테러)처럼 영원히 악명 높은 날로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네타냐후는 “이 괴물(하마스)들은 여성을 성폭력하고, 남성을 참수했다. 아이를 산 채로 불태웠다”며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부모를 죽이고 부모 앞에서 그 자녀를 살해했다. 이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모두 255명을 가자지구의 어두운 지하감옥으로 끌고 갔다”고 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펼치는 군사작전에 대해선 “죽음을 미화하는 사람과 생명을 신성화하는 사람들간 충돌”이라며 “이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야만과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했다. 그는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가족이 견뎌온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어제 다시 그들을 만나 이렇게 약속했다. 그들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군사 능력과 가자지구 통치를 소멸시키고 모든 인질을 집으로 데려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그것이 완전한 승리이며 우리는 그 이하로 타협(settle)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할 때 우리는 이기고 그들은 진다”고 했다. 그는 “인질 석방을 위한 집중적인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진심 어린 지원에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한편 그는 연설에서 가자지구 전쟁을 반대하고 자신의 연설을 비판하는 미 의회 근방의 시위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우리가 아는 한, 이란은 지금 이 건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이스라엘 시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들 시위대는) 이란의 유용한 바보들”이라고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24일 인디애나주 유세를 위해 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투에서 내리고 있다. /로이터

한편 이날 네타냐후의 연설에 미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불참했다. 외국 정상의 의회 연설은 당연직 연방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주재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해리스는 이날 미리 계획된 행사를 위해 인디애나폴리스로 이동했다. 미 언론들은 “대선이 코앞이라 시급한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외부 유세가 우선일 수 있다”면서도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지속하는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보이콧으로 인식하는 기류도 강하다”고 했다.

이날 공화당은 네타냐후 연설에 환호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전쟁 범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일부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항의의 의미로 일찍 자리를 떴다”며 “해리스를 비롯해 민주당 상·하원의원 80여 명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해리스는 그간 바이든보다 이스라엘에 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미 정가에선 해리스가 바이든의 대(對)이스라엘 정책 기조와 차별화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해리스는 올해 3월 앨라배마주 연설에서 가자지구 상황을 “끔찍한 인도주의적 재앙”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인도적 지원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었다.

해리스가 ‘반이스라엘’ 발언을 이어갈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전쟁 지원으로 이탈한 아랍계 미국인 및 진보 진영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민주당의 중도층이 되려 이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해리스는 내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회담때는 참석할 예정이다. 해리스 보좌진에 따르면 해리스는 회동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밝히되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할 예정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네타냐후는 이날 연설로 미 의회에서 가장 많은 연설을 한 해외 지도자가 됐다. 그는 이날을 포함해 역대 네 차례(1996년·2011년·2015년·2024년)에 걸쳐 의회 연단에 서게 됐다. CNN은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 의회에서 연설하는 횟수와 맞먹을 정도”라고 했다. 네타냐후 다음으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미 의회에서 세 차례(1941년·1943년·1951년)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