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 23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첫 대선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AP 연합뉴스

“사람들은 ‘미국이 유색인종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묻습니다. 새로운 질문이 아닙니다. 매번 선거에 나설때마다 받았던 질문입니다. 중요한 건 제가 (모든 선거에서) ‘이겼다(won)’는 겁니다.”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019년 아이오와주(州) 유세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20년 대선 경선 초반 출마 선언을 했다가 중간에 사퇴했었다. 해리스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미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리스가 등판하면서 인종 및 성(性)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에서 ‘인종’ ‘성별’이 이번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고 27일 보도했다. 미국 유권자들이 ‘흑인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WSJ는 지난 23~25일 등록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1%가 해리스가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대통령으로 지지할지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며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은 미국이 흑인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해리스의 인종·성별이 다른 미국인들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할까’는 질문엔 응답자의 절반만이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유권자들 자신들은 인종·성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면서도 다른 지지자들은 여전히 이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 AFP 연합뉴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가 고향인 해리스는 중남미 섬나라 자메이카 출신인 흑인 부친과 인도 브라만(인도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고 계급) 가문 출신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 명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어머니는 암을 연구한 과학자로 캐나다 명문 맥길대 교수를 지낸 학자 집안이다. 다인종인 해리스는 자신을 ‘흑인이자 아시아인’이라고 소개한다. 흑인으로서 정체성이 강해 워싱턴DC의 명문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전미흑인법학생협회(NBLSA) 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해리스는 정치 경력 내내 자신의 인종과 성별이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주시해왔다고 한다. 민주당 일각에선 해리스가 흑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온건적인 성향을 보이는 데 대한 불만도 나왔지만, 이는 해리스가 자신의 인종과 성별을 매우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WSJ는 전했다. 두 가지 요소가 자신의 과거 정치 이력이나 상승 가능성 등을 가리지 않도록 완급 조절을 해왔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친민주당 성향 매체 이션은 지난 23일 “‘미국은 흑인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기사에서 “앞으로 몇 주, 몇 달 동안 ‘미국은 흑인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가 될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러스트 벨트’(제조업 쇠퇴 지역) 지역에서 해리스의 지지율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WSJ는 전했다. 흑인 여성인 해리스가 러스트 벨트의 저학력 백인 남성들이 갖는 거부감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해리스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의 표심(票心)을 공략해 백인 남성의 지지 하락을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엑스(HarrisX)가 지난 22~24일 등록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리스는 교외 거주 여성층 지지율이 52%에 달해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이상 학력 백인 유권자 지지율도 49%로 트럼프를 앞섰다.

이미 공화당은 해리스의 성별과 인종을 두고 공세에 나서고 있다. 지난 며칠간 공화당 인사들은 해리스 등판을 두고 잇따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채용’이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여성이자 소수 인종 때문에 부통령이 된 데 이어 이번엔 대선 후보까지 올랐다는 조롱의 표현이다. 그러나 WSJ는 “이런 식의 공격이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공화당 지도부는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공화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최근 비공개 회의에서 당 의원들에게 “(해리스의 인종, 성별 문제가 아닌) 정책 비판에 충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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