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선거 유세에서 ‘남부 억양’을 썼다가 남부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31일 보도했다.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유색 인종이지만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라 코케이지언(Caucasian·백인) 억양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남부 경합주(州)를 찾아 이들의 표심 공략을 위해 남부 사투리를 쓰자 ‘장사꾼’ ‘가짜’ 등의 조롱을 받고 있다고 뉴욕포스트 등이 전했다.

해리스는 지난 30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야외 유세 연설 중 “여러분 모두가 2020년에 우리의 승리를 도왔고 2024년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이 문장을 모음을 길게 늘려 말하는 특유의 남부 억양으로 말했다. 조지아·앨라배마·미시시피 등 지역에서 쓰이는 이 억양은 ‘남부식 느린 말투(Southern Drawl)’이라고도 불린다. 미 언론들은 “남부 유권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라면서도 “사투리와는 거리가 먼 표준 억양을 구사해왔던 해리스가 남부 억양을 흉내내자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비판이 많다”고 했다. 실제 이날 엑스(옛 트위터)엔 해리스가 남부 억양을 쓰는 영상이 잇따라 공유되면서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3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대선 유세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특히 컨트리뮤직, 바비큐 등으로 상징되는 남부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남부 억양을 ‘외지인’이 모방하는 데 대한 지역민들의 반감이 크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한 소셜미디어 글에선 “문화의 뿌리와 정서를 공유하는 사투리를 인기몰이를 위해 이용하는 얄팍한 정치적 행태는 규탄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해리스는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당 경선 때도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선 유독 받침 ‘ㅇ’(영어에선 g 발음)을 생략한 흑인식 억양을 구사해 “필요할 때만 흑인 어조를 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해리스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인도 출신 어머니의 ‘아시아 억양’ 때문에 무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리스의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유방암 연구자로 캐나다 명문대인 맥길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해리스가 유색 인종임에도 표준 억양을 쓰는 이유도 소수계의 설움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 기자가 현장에서 봐왔던 해리스의 연설은 ‘평범’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해리스가 지난 2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딥 사우스(Deep South·인종 차별이 심했던 남부 주들)’의 대표 지역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전통 흑인 대학(HBCU)에서 유세에 나섰을 때도 흑인 지지자들 일부는 “해리스의 발음이 흑인 같지 않다”고 했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과거 2008년 대선 당시 남부 지역을 찾아 흑인 억양을 써 강한 비판을 받았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남부 아칸소 출신이고 그 곳에서 주지사 등을 거치면서 부부가 20년 가까이 아칸소에서 산 만큼 힐러리 또한 남부 억양에 친숙한 편이다. 그럼에도 ‘백인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힐러리가 남부 억양을 쓰자 특히 가식적이란 반발이 나왔었다.

한편 해리스와 이번 대선에서 붙게 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의 ‘정체성’에 대해 공세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트럼프는 31일 전미 흑인 언론인 협회(NABJ)에 행사에 참석해 “그녀(해리스)는 항상 인도계였다. 몇 년 전 우연히 흑인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흑인이라는 사실 조차 몰랐다”며 “그리고 이제(대선 국면에서) 그녀는 흑인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는 “나는 해리스가 인도인인지, 아니면 흑인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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