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D 밴스(40)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이 미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 이래, 예일대 로스쿨 재학 시절 그의 멘토였던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와의 관계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한 빈곤한 산촌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의 쇠락한 공업지역(Rust Belt)에서 자란 밴스가 2011년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 그는 취직 면접 때에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것, 가죽과 인조 가죽이 다르다는 것, 버터 자르는 칼은 장식용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하던 시골뜨기였다.

밴스의 표현에 따르면, 의사와 엔지니어를 부모로 둔 학생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았다고 한다.

밴스가 자신의 책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줬다"고 말한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왼쪽)와, 로스쿨 동급생으로 함께 추아를 멘토로 뒀던 지금의 아내 우샤 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 그에게 멘토가 돼 준 사람이 추아 교수였다. 밴스에게 그가 자랐던, 마약과 빈곤에 찌든 백인 빈곤층 가정과 삶을 담은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을 쓰도록 적극 권유한 이도 추아 교수였다. 힐빌리는 미국의 러스트벨트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지난 달 15일 밴스가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가 되기 전까지 이미 300만 권 이상이 팔렸고, 이후에 75만 권이 더 팔렸다. 이 책으로, 무명의 예일대 로스쿨 졸업생 밴스는 전국적인 인물이 됐다. 2020년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도 나왔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인들은 가난한 백인 미국인들의 삶과 불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처음 밴스가 추아 교수를 만났을 때, 추아는 ‘타이거 맘의 승전가(Battle Hymn of Tiger Mom)’이란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두 딸에게 탁월성을 강조하며 엄격하게 키웠던 훈육법을 다룬 책이었다.(추아는 작년 10월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끈기를 심어준 것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하고 종종 화를 참지 못했다며, ‘내가 종종 너희들을 야단치는 편이었지만, 사실 둘 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고 똑똑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내가 품은 최대의 기대 이상이었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밴스에 따르면, 그의 살아온 얘기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책으로 써 보라고 강력히 권한 사람은 추아였다. 밴스는 망설였다. ‘나 같은 사람이 의미 있는 책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쓰는 것은 건방지고 주제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몇 건 끄적거려서 추아 교수에게 보내면서도,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마세요”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정말 당황스럽네요”라고 했다.

추아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2017년 6월 어틀랜틱 몬슬리 인터뷰에 따르면, 추아는 “처음 몇 건을 읽어보고는 ‘오, 이 사람은 진짜 스토리가 있네. 글도 정직하고. 모든 사람이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아는 밴스의 책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책의 뒤표지에 쓰는 추천사에 “내가 읽어본 책 중에서 최고”라고 썼다. 출판사 편집자가 조금 톤다운(tone down)할 수 있느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2016년 6월 첫 책이 나왔을 때, 추아는 자신이 아는 모든 TV 프로듀서와 관련자들에게 웃는 얼굴 이모티콘과 느낌표를 수많이 찍어 이 책을 추천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눈앞의 경력 쌓기 보다, 미래의 아내를 우선하라”

밴스에게 여느 로스쿨 졸업생처럼 예비 법조인의 길을 걷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권유한 이도 추아 교수였다.

‘힐빌리의 노래’에 따르면, 밴스는 딱히 법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졸업 후 실력 있는 연방법원 판사 밑에서 재판연구원(clerk)으로 일하기를 원했다. 재판연구원 취직은 로스쿨 학생들에겐 일종의 ‘집단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추아 교수를 찾아가 인맥이 넓고 권위 있는 한 연방법원 판사에게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강하게 졸랐다.

그러나 추아 교수는 밴스에게 최종 후보자 명단에 들었다고 알려주는 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은 합리적인 이유로 재판연구원에 도전하는 것 같지가 않다. 오로지 경력을 쌓겠다고 이러는 것 같은데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경력이 당신의 진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요.”

그러면서 추아는 이 연방 판사 밑에서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재판연구원 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 사랑에 푹 빠진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단절될 것이라고 했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우샤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그 다음에 당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았으면 한다.”

결국 밴스는 추아의 조언을 따랐고, 로스쿨 졸업 1년 뒤인 2014년 여자 친구이자 로스쿨 동급생이었던 우샤 칠루쿠리와 결혼했다. 밴스는 나중에 “추아 교수의 조언 덕분에, 내 인생의 경로를 바꿀 뻔했던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단견(短見)적인 야망보다, 한 여성에 우선하고 내 진로를 스스로 결정해가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아 교수는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추아 교수는 “밴스는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고, 전통적인 경력을 밟는 것은 오히려 그의 진전을 늦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를 ’히틀러’라고 부르다가 트럼프주의자가 된 밴스

하지만 이후 밴스는 많이 변했다. 밴스는 2016년 미국 대선과 그 이후에도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 ‘도덕적 재앙’ ‘완전한 사기꾼’ ‘일반 미국인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이용해 먹는 인물’ ‘문화적 아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를 “비난 받아 마땅하다(reprehensible)”고 했던 밴스는 트럼프의 지지를 받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 오하이오주의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그 직전에 2021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밴스는 “트럼프에 대해 치명적인 말을 한 것을 후회한다. 그 사람에 대해 그토록 틀렸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예일대 로스쿨에서 가르치는 추아는 제자 밴스의 이러한 변심(變心)을 어떻게 생각할까. 2021년 11월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주의자가 된 옛 제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추아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결코 내 학생들을 비판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