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5일 뉴욕주 올버니카운티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4년 허드슨밸리에 사냥을 다녀오던 중 도로에서 한 여성이 새끼 곰을 치어 죽이게 한 장면을 봤어요. 차를 세우고 그 곰을 내 밴 트렁크에 넣었죠. 상태가 괜찮아 가죽을 벗겨 그 고기를 우리 냉장고에 넣으려 했는데….”

지난 4일 미국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X(옛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10년 전 곰의 사체를 유기한 ‘충격 고백’을 했다. 케네디는 “뉴욕시의 피터 루거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고, 이후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새끼 곰을 처리해야 했다”며 “곰이 자전거에 치여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체를 센트럴파크 내 버려진 자전거 옆에 유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들이 현장을 조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겁이 났었다” “다행히 이야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10년 동안 잠잠했다”고도 했다. 케네디는 뉴요커가 이런 내용을 보도하기 하루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선제적으로 공개했다.

케네디의 이런 고백과 동시에 10년 전 뉴욕에서 화제가 됐던 한 미제 사건도 풀리게 됐다. 그해 10월 빌딩 숲 한 가운데 있는 센트럴파크를 반려견과 산책하던 한 여성이 덤불 속에서 죽은 곰을 발견하는 일이 있었다. 곰이 어떻게 뉴욕 도심 한복판까지 올 수 있었는지를 놓고 온갖 추측이 무성했는데, 10년 뒤에서야 범인이 케네디로 밝혀진 것이다. 당시 뉴욕주 환경보전국이 부검에 나서 이 곰이 생후 6개월밖에 되지 몸무게 20kg의 새끼 곰이고, 자동차 충돌로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CNN은 이번 일을 “기괴한 에피소드”라 표현하며 “새끼 곰을 버린 행위는 최대 250달러(약 34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1년)가 만료됐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센트럴파크 전경. /조선일보DB

케네디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끼 곰 사체 유기’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7일 뉴욕 법정에서 기자들과 만나 웃는 얼굴로 “나는 평생 로드킬(roadkill·자동차에 치여 사망한 동물)을 주워 왔고 한때 집에 냉동고가 동물 사체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매사냥꾼인 그가 자신이 훈련하는 까마귀들을 먹이기 위해 동물 사체를 주워다 먹였다는 것이다. 여러 논란이 이어지자 케네디 캠프 측 대변인이 “현재 이 냉동고는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케네디가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달엔 케네디가 20여 년 전 자택에서 베이비시터를 성추행했다는 의혹도 연예 매체들이 재소환했다. 케네디는 “나는 떠들썩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서도,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냐는 질문에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케네디는 올해 상반기만 해도 일부 여론조사에서 15%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1992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20% 가까이 득표한 기업인 출신 로스 페로 이후 가장 파괴력 있는 제3후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이한 언행이 겹치고 선거 자금까지 바닥나면서 모멘텀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6월 한 달 동안 620만 달러(약 85억원)를 지출했지만, 선거자금 모금은 530만 달러(약 73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선거에 임박할 수록 민주·공화 할 것 없이 양당의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양상이라 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8일 공개된 입소스 여론 조사에선 다자(多者) 대결 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42%,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7%, 케네디가 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미 정가에선 케네디가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 때 트럼프와 ‘밀실 회동’을 한 것이 그의 완주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며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네디는 부인했지만, 이 자리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가로 내각 장관 자리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오른쪽)와 러닝 메이트인 니콜 섀너핸. /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