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8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웨인카운티 공항에서 선글라스를 잡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장한 지 3주가 지나도록 기자회견을 한 번도 열지 않아 언론을 기피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해리스는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직후부터 경합주를 중심으로 10여 곳에서 유세를 했지만 신문·방송 인터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또 유세 일정에 동행하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때때로 전용기 안에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 매체 액시오스는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이 틱톡과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주도하는 시대 정신을 수용했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나 질의·응답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도 “해리스가 종종 전용기 뒤쪽에 앉은 기자들을 찾아 비공식 발언을 한다. 이는 바이든이 재임 3년 반 동안 단 두 번만 했던 일”이라고 했다. 전용기에는 비용을 지불한 일부 언론사 기자만 탑승할 수 있어서 언론계에선 “해리스가 ‘비공식 페이스타임(대화)’으로 언론을 매수하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논란이 계속되자 해리스는 8일 “이달 말까지는 인터뷰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27일 바이든이 TV 토론에서 참패한 지 한시간 만에 CNN에 출연해 “재임 중 성과를 봐 달라”고 호소한 것이 해리스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반면 해리스의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3주 동안 폭스뉴스 등 5개 매체와 인터뷰를 소화한 것은 물론, 인기 게임 스트리머 아딘 로스의 인터넷 생방송에 출연하는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 12일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도 대담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8일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시간 동안 12개의 질문을 받았다. 이는 해리스와 차별화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됐다. 트럼프는 이날 “해리스가 언론을 피하고 있다”며 “바이든보다도 무능하고 인터뷰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도 유세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해리스가 질문에 답하지 않아 여러분들이 외롭겠다”며 “왜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8일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없이 전용기에서 비보도 전제로만 기자들을 만나 언론을 기피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해리스의 행보를 두고 갑자기 대선 무대에 뛰어들게 돼서 아직 준비가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새 후보로서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는데 굳이 설화(舌禍)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해리스에겐 언론 인터뷰가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NBC 방송 인터뷰에서 ‘왜 국경에 가보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유럽에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가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해리스는 2022년에도 방송에 출연해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 발언했지만, 답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언론을 기피한다는 논란이 계속되자 해리스는 8일 경합주 유세를 위해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8월 말까지 인터뷰 일정을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해리스와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Walz) 미네소타 주지사가 이달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 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선거 캠프 내부에선 ‘해리스가 꼭 잡아야 하는 경합주 유권자 표심에 호소하는 과정에서 전국 단위 언론과의 인터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해리스와 트럼프는 다음 달 10일 첫 TV 토론에서 맞붙는다. ABC뉴스는 8일 “(내달 10일) 해리스·트럼프 모두 ABC 토론에 참석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별장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9월 4일 폭스뉴스, 같은 달 25일 NBC뉴스 토론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해리스가 트럼프의 이 제안에도 응할 경우 대선 레이스 분위기가 토론으로 한껏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율은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7일까지 유권자 20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합주 7곳(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합계)에서 해리스 지지율은 50%, 트럼프는 48%로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접전이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우위를 보였던 남부 경합주에서 격차를 빠르게 좁혀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날 발표된 전국 단위 조사에선 트럼프가 해리스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