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대표적인 진보 도시다. 공화당 출신이 시카고 시장을 지낸 것은 1927~1931년 재임한 윌리엄 톰슨이 마지막으로 약 100년 전 일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2020년 대선 때 일리노이주에서 57% 몰표를 받아 40%대 득표에 그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볍게 제쳤다. 민주당이 전당대회 장소로 시카고를 선택한 이유는 뉴욕·로스앤젤레스(LA)에 이은 미국 3대 도시로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지지층을 통합·결집할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2일 열리는 전당대회 시작을 앞두고 18일 방문한 현장에선 자부심과 불만이 공존하는 ‘진보 도시’의 민낯도 볼 수 있었다.

올해 대선의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가장 큰 딜레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 간의 전쟁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내부에서 첨예한 갈등이 일고 있다. 미 전역 2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DNC(민주당 전당대회) 행진’은 전당대회 첫날과 마지막 날 대회장인 ‘유나이티드 센터’로부터 세 블록 떨어진 유니언 공원에서 대규모 반(反)이스라엘 시가행진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격화되며 경찰·시위대 충돌이 유혈 사태로까지 번졌던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카고 경찰 당국은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18일 오후 시내에서 열린 전당대회 환영 행사에서 친(親)팔레스타인 활동가가 무대에 난입해 “바이든·해리스가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를 저지르고 있다”고 소리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공개된 민주당 정당강령(정강)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제한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들을 더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친팔레스타인 단체뿐만 아니라 낙태권 사수, 기후 위기 대응, 노조 권익 수호, 경제 정의 구현 등을 주장하는 수많은 집단이 전당대회 기간 도심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날 시카고 도심 건물 상당수가 판자로 건물 입구를 가로막고 혹시 모를 도난·약탈에 대비하고 나섰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개최 하루 전인 18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내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반전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린다. /AP 연합뉴스

낙태 합법화 운동을 펼쳐온 비영리 단체가 19일부터 양일간 운영할 이동식 ‘건강 클리닉’ 또한 논란을 낳고 있다. 여성의 생식권(출산 관련 결정을 내릴 권리)이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 비영리 단체가 대회장 인근에 버스를 세워 놓고 약물을 통한 임신중절과 정관수술을 제공한다고 밝혀 보수층의 공분을 사고 있다. 19일 도심에서 피자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바이든은 지난 4년 동안 연료비와 임대료만 왕창 올려놨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생식권 같은) 고상한 가치가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급증하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도 시카고 여론을 분열시킨 주제 중 하나다. 인권·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시카고는 ‘성역 도시’를 자처하며 2년 전부터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텍사스에서만 1만5000명 이상이 한참 북쪽에 있는 시카고로 넘어왔다. 하지만 공원·공항 등 공공장소에 노숙자가 급증하면서 주민들 사이엔 “왜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이민자들을 위해 시카고 돈을 낭비해야 하느냐”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엔 중남미 출신 불법 이주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시의회 회의에 주민 수백 명이 난입해 난장판이 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당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도 감지된다. 시카고에서 만난 한 한인은 “살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민주당 출신들이 연달아 급진적인 정책을 펴면서 도시를 다 망가뜨려 놓았다”고 했다. 절도를 경범죄로 분류하고 범죄자를 체포해도 쉽게 풀어주는 등 관대한 형사 정책을 편 탓인지, 범죄율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2022년 대형 헤지펀드인 시타델은 최고경영자가 “출근길에 흉기에 찔린 사원도 있다”며 본사를 플로리다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중장비 제조 업체인 캐터필러 역시 같은 해 세제 혜택 등을 이유로 시카고 근교에서 텍사스로 이전했고, 시카고 도심에 있던 항공 제조 업체 보잉도 버지니아로 떠났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시카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4.3%에서 2020년엔 3.7%로 줄어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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