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근처에 카멀라 해리스 대통령을 그린 벽화가 있다. /AFP 연합뉴스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지지율이 뚜렷하게 낮았던 선벨트(sun belt·남부 지역) 경합주 네 곳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일부 주에선 공화당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해리스에게 후보를 넘겨주기 전까지만 해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위가 확실했던 지역들이다.

해리스가 약진하며 판세가 과거에 비해 민주당에 유리하게 바뀐 배경엔 이른바 ‘허니문’이라 불리는 후보 확정 초반 효과와 함께 흑인·여성·청년 등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결집이 힘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중엔 바이든이 인지력 저하 논란 등으로 트럼프에게 패할 조짐이 보이자 대선에 대한 관심을 접은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해리스 등장 이후 ‘해볼 만하다’는 각종 조사 결과가 나오자 해리스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시에나대가 지난 8~15일 선벨트 경합주 네 곳에서 실시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해리스는 두 개 주에서 트럼프를 앞섰고 다른 두 개 주에서도 접전 수준까지 트럼프 지지율을 따라붙었다. 해리스는 애리조나에서 50%의 지지율을 기록해 트럼프(45%)를 5%포인트 앞질렀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선 49%의 지지율로 트럼프(47%)를 오차 범위(±4.2%) 내에서 근소하게 앞선다고 나타났다. 트럼프는 조지아에서 지지율 50%로 해리스(46%)를 4%포인트 앞섰고, 네바다에서도 48%의 지지율로 해리스(47%)보다 근소하게 우세했다. 해리스는 지난 10일 발표된 러스트벨트(제조업 쇠락 지역) 경합주 세 곳(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에서도 트럼프를 4%포인트 앞섰다.

그래픽=김성규

바이든 사퇴 전인 지난 5월 같은 조사에선 트럼프가 애리조나·조지아·네바다 세 개 주에서 50%의 지지율로 바이든(41%)을 크게 앞선다고 나왔고 이후 ‘트럼프 대세론’이 두드러졌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사는 하지 않았고 러스트벨트 3개 주 또한 동률이었던 위스콘신을 빼면 트럼프가 앞서, 경합주 중 민주당 우세가 없었다. NYT는 3개월 사이 민주당이 따라붙었다고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해리스가 빠른 속도로 돌풍을 일으키며 트럼프가 우세했던 선벨트를 다시 경합의 한복판에 올려놨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자체 예측 모델을 근거로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대선 승리에 필요한 270명의 선거인단을 쉽게 확보할 전망”이라고 했다.

해리스가 이처럼 선전(善戰)하는 배경으론 고령의 바이든을 미덥지 않아 했던 흑인·여성·청년 등 민주당 ‘집토끼’들의 귀환이 꼽히고 있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선 이들의 몰표를 받아 트럼프를 꺾을 수 있었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이들의 지지율이 내려가며 고전했다. 특히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낙태권 문제를 두고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이 어정쩡한 입장을 보인 것은 ‘내 몸에 대한 자유’를 원하는 청년층과 여성 표심(票心)을 식게 한 요인으로 꼽혔다.

해리스와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낙태권에 대해 ‘자유와 억압 사이의 선택’이라며 확실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여성·청년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서고 인도계 흑인인 해리스에 동질감을 느끼는 흑인들까지 결집하면서 전반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최근 발표된 이코노미스트·유거브 조사에선 흑인 유권자의 80%, 18~29세의 52%, 민주당 지지자의 93%가 각각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였던 지난 6월 27일 TV 토론 직전 조사(흑인 70%, 18~29세 44%, 민주당 지지자 87%) 때보다 각 10%포인트 안팎으로 지지율이 상승했다.

2022년 연방대법원이 국가적 차원에서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를 폐기한 판결 이후 낙태권 존폐 결정 권한이 각 주로 넘어갔고, 이번 대선 때 여러 주에서 주민 투표가 함께 치러지는 것도 해리스에게는 호재다. 선벨트 경합주인 애리조나·네바다를 비롯해 10여 개 주가 낙태권 법안을 대선 당일 함께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낙태권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은 이것이 여성 유권자들을 결집하고 투표율을 견인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치 전략가인 셀린다 레이크 ‘레이크 리서치 파트너스’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에 “해리스는 남성보다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더 큰 표 차로 승리해야 하고, 부동표(浮動票)가 많은 고령·저학력 백인 여성이 남편을 따라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을 막아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해리스의 ‘대관식(공식 대통령 후보 선출)’이 될 민주당 전당대회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19일부터 나흘 동안 치러진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미국 대선의 꽃’이라 불리는 이번 행사엔 대의원 5000여 명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언론인 등 약 5만명이 참여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와 빌 클린턴 등 전 대통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전 하원 의장 등 민주당 진영의 유력 인사들이 총출동해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미국 언론들은 시카고가 고향인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배우자도 사상 첫 흑인·여성 대통령 후보의 출정식에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스는 마지막 날인 22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한다.

☞선벨트(Sun Belt)

미국 남부 주(州)로 북위 36도 남쪽에 있는 기온이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은 지역을 일컫는다. 미국의 공화당 전략가 케빈 필립스가 북동부 및 오대호 연안의 춥고 눈 많이 오는 ‘스노벨트(Snow Belt)’에 대비되는 지역으로 1967년 처음 사용했다.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플로리다에서 조지아·루이지애나·오클라호마·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와 네바다 일부를 거쳐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 등 15주가 선벨트에 들어간다. 이번 대선에선 이 중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애리조나·네바다가 쇠락한 공업 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의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와 함께 경합주로 분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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