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있을지 모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관식’이 될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한 19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의 대형 컨벤션 센터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4년마다 한 번에 열려 ‘대선의 꽃’이라 불리는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대의원과 자원봉사자, 언론인 등 약 5만명이 참석했다. 대회 기간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 등이 각종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경찰은 지난 17일 행사 장소인 매코믹 플레이스와 유나이티드 센터 반경 1㎞에서 일찌감치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에 세운 2m 높이 펜스를 놓고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경호 작전을 위해 펜스를 설치해 차량·인원의 진입을 차단하고, 검문·검색을 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이를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인 ‘불법 이민’ 문제와 연관 지어 해리스를 공격하고 나섰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고,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친애하는 인플루언서인 베니 존슨이 현장을 찾았다. 그는 “전당대회 현장에서 거대한 장벽을 발견했는데 여러분은 결코 믿지 못할 것”이라며 “검문소와 철조망, 시멘트로 된 바리케이드, 보안 카메라, 드론 등 ‘국경 차르(Czar)’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것이 있다. 환상적이다”라고 했다. ‘국경 차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불법 이민 문제를 해리스에 일임하며 붙여준 이름인데 불법 이민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본인 경호에만 신경 쓰는 해리스를 꼬집은 것이다.
불법 이민 문제는 해리스의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국경 순찰대의 하루 체포 건수가 1만명을 넘어갈 정도로 이번 정부 들어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임기 초반 해리스가 이 문제를 총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2021년 NBC 방송 인터뷰에서 ‘왜 국경에 가보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유럽에도 가보지 않았다”고 발끈했다가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비판과 함께 자질 논란이 불거진 뼈아픈 경험도 있다. 이를 다시 연상시키는 전당대회 현장의 거대한 펜스를 놓고 네티즌들은 “민주당의 위선이다” “철저한 검문·검색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것” “이제야 신분증 검사의 중요성을 알겠나”라고 조롱하고 있다.
전날부터 도심 시가 행진을 통해 실력을 과시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역시 이런 과잉 경호가 불만이다. 바이든 정부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이 불만인 이들은 “제노사이드 바이든, 킬러 카멀라”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일에도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불과 세 블럭 떨어진 유니언 공원에 집결했다. AP는 “주최 측이 이날 2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차로 3분 거리라 시위가 격화될 경우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미시간에서 이른바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해리스가 영구적인 휴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경합주를 잃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시카고시 당국은 경찰 1만2000여 명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전날 민주당전국위원회(DNC)가 주최한 환영 파티에 활동가들이 난입해 카멀라를 비판했고, 시위를 벌이던 20대 남녀가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