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공식 추인할 민주당 전당대회가 19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나흘 일정에 돌입했다. 첫날엔 조 바이든 대통령을 필두로 질 바이든 여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앤디 베시어 켄터키 주지사, 크리스 쿤스·짐 클라이번 상원의원 등 진보 진영의 유력 인사들이 총출동해 분위기를 띄울 예정이다. 켄터키에서 온 여대생 해들리 듀발(23)도 오늘 밤 모두의 응원 속에 무대에 오르게 된다.
해리스 선거 캠프 관계자는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위험하고 잔인한 낙태 금지로 피해를 본 남성과 여성이 무대에 오를 것”이라며 듀발의 연설 소식을 귀띔했다. 컨테키주 오웬스보로에서 태어난 듀발은 5살 때 계부에게 처음 성적 학대를 당했다. 12살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2주 후 유산하는 비극을 겪었다. 2022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50여 년 만에 폐기하자 공화당이 집권한 일부 주는 강간, 근친상간도 예외로 하지 않는 강력한 낙태금지법을 제정했다. 이후 듀발이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면서 전국적인 반향이 일었고, 여성의 낙태 권리를 중시하는 진보 진영에서 유명 인사로 거듭났다.
바이든 여사는 지난달 “그녀의 이름은 해들리 듀발”이라며 X(옛 트위터)에 듀발의 사연을 공유했고, 올해 6월엔 해리스는 듀발과 함께 MSNBC 방송에 동반 출연했다. 민주당은 여성의 생식권(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권리)이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이자 지지층의 투표율 상승을 견인할 호재로 보고 있는데, 듀발 만큼 설득력 있는 캠페인을 펼칠 인물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듀발은 12살 때 임신했을 당시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말을 되뇌며 희망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선 민주당 베시어 후보의 광고에 출연해 낙태 금지를 주장하는 공화당 후보를 비판, 베시어의 재선에 톡톡한 기여를 했다. 해리스는 19일 유나이티드 센터 현장에서 듀발의 연설을 지켜볼 계획이다.
듀발이 근친 강간과 임신, 유산을 고백한 뒤 계부 제레미 휘틀리지는 체포돼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듀발은 최근 미드웨이대를 졸업했다. 재학 중 축구 선수로 활동했고 후배들을 위한 멘토로도 봉사했는데, 미드웨이대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과 권한 부여의 등불이 되기까지 그녀의 여정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남자 친구와의 연애를 인증하는 사진을 올렸고, 가장 인기 있는 이들만 될 수 있다는 ‘홈커밍 퀸(homecoming queen)’에 선정되기도 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이후 일부 주에서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듀발은 “여성의 삶이 위태로운 상태고 우리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듀발은 이날 전당대회 무대에 올라 “나는 수년간 성적 학대 끝에 의붓아버지에 강간을 당했다”는 무거운 말로 입을 뗐다. 이어 “12살 때 첫 임신 테스트를 받고 그때 처음으로 선택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트럼프의 낙태 금지 정책으로 인해 오늘날 전국의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선택권이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고 했다. 듀발은 “해리스는 낙태권을 회복하기 위한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다른 여성들이 우리가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