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은 플란넬 셔츠 좀 보세요. 이게 어딜 봐서 정치 컨설턴트가 추천한걸로 보이나요? 이건 월즈가 옷장에서 스스로 꺼내입은 겁니다.”
20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의 ‘패션 센스’를 언급했다. 그러자 유나이티드 센터 안의 전광판이 월즈의 배우자인 그웬을 비쳤다. 그웬이 연신 박수로 맞장구를 치며 수긍하는듯한 모습에 장내에 있던 당원과 대의원들 사이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같은 시각 월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합동 유세를 하고 있었다. 오바마는 “나는 월즈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며 “시골에서 태어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풋볼 코치까지 하며 현장에서 부대낀 이런 사람들이 우리 정치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중앙 정치에서 무명(無名)에 가까웠던 월즈가 특유의 중서부 ‘시골 아저씨’ 감성으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월즈의 언행만큼이나 화제가 되는 것이 그의 패션이다. 잘 다려진 셔츠, 칼주름이 잡힌 양복만 입고 다니던 워싱턴DC의 드레스 코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월즈는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로 자신을 처음 유권자에 소개하는 영상에서도 흰색 운동화와 카키색 바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됐지만 여전히 재킷과 작업 부츠, 구겨진 카키색 바지 같은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며 “마치 축구 경기 관중석에 있는 것처럼 업무에 적합한 복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성복 작가인 데릭 가이는 미 언론에 “월즈는 캐주얼한 옷이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했는데, 정가에선 이런 스타일이 월즈의 해리스가 외연 확장이 필요한 유권자들에게 소구하는 측면이 크다고 보고 있다. 월즈가 애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는 카르하트(Carhartt)다.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탄생해 지난 작업복, 자켓, 바지, 셔츠 등이 지난 130년 동안 미국의 중산층 노동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친숙한 브랜드다. 패션잡지 GQ는 “지난 수년간 많은 미국의 선거 출마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블루 칼라’ 코스프레를 했는데, 클래식한 미국 작업복을 편안하게 소화하는 월즈의 능력은 다른 정치인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며 “결코 진정성은 대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월즈가 러닝메이트 후보로 같이 해달라는 해리스 후보의 전화를 받았을 때 쓰고 있던 카모 모자도 화제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입소문을 타면서 해리스 캠프는 월즈를 지명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같은 디자인에 ‘해리스·월즈(HARRIS WALZ)’ 문구를 새긴 모자를 출시했다. 30분 만에 준비한 물량 3000개가 다 소진됐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추가 발주를 넣은 상태다. 캠프 관계자는 “수백만 달러어치 선(先)주문도 들어온 상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힙한 제품이 됐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월즈가 쓰고 있는 카모 모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공식 석상을 다녀야 하는 월즈가 요즘은 워싱턴 문법에 맞춰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는 이벤트가 많아졌지만, 양복을 입은 모습도 보면 상의가 주름져 있고 바지 통은 ‘태평양’ 같이 넓어 보인다. 거꾸로 이게 이번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에서 유권자들과의 스킨십을 용이하게 할 거란 기대가 해리스 캠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월즈는 21일 공개된 AP·시카고대 여론조사에서 36% 호감도를 기록, 27%를 기록한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을 앞섰다. 비호감도 역시 월즈가 25%를 기록해 밴스(44%)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