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17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고 허버트 R 맥매스터(62)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핵을 포기한 뒤 축출됐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의 독재자들과 비교해 이같이 말했지만, 즉각 미측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두 번째 안보보좌관(2017년 2월~2018년 3월)을 지냈던 3성 장군 출신의 맥매스터는 27일 공개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에서 트럼프 재임 초기 한·미 간 긴장 관계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358쪽짜리 회고록에 한국 및 북한은 221차례 등장한다.
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30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트럼프와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후세인이나 카다피처럼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펜스는 문 대통령에게 “이미 북한은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재래식 포를 보유하고 있는 데 왜 (추가로) 핵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펜스는 이어 “우리는 김정은이 ‘공격적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올해 초 김정은은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대통령의 공언과 정반대로 핵무기로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겠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맥매스터는 첫 정상회담부터 한미가 대북 정책 방향을 두고 이견(異見)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양국 간 공동성명을 작성하는 과정에 한국 측은 지속해서 북한과의 협상 전망을 강조하는 표현을 고수했다”며 “반면 (백악관 안보팀은) 비핵화가 김정은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제재 이행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맥매스터는 문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 수위를 축소하려고 급급했다고 밝혔다. 첫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사흘 만인 7월 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자 맥매스터는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정 실장은 “우리는 아직 도발에 사용된 미사일이 ‘탄도미사일(ICBM)’이라고 규정하는 데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했다고 한다. ICBM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다. 맥매스터는 이에 자신이 “의용, 당신이 ICBM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해서 그 미사일이 ICBM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따졌다고도 했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해 도발을 감행한 상황에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데 대해 트럼프가 격노했다고도 맥매스터는 전했다. 그는 “당시 10억달러(약 1조3310억원)에 달하는 요격 미사일 시스템 배치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문 후보 발언을 들은 트럼프는 나에게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스스로 내게 해야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사드는 미국 군과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수습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사드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졌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2017년 6월 첫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식 배치를 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가 헛기침을 한 뒤 “환경영향평가는 시간 낭비”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맥매스터는 만찬 당일 오전 정의용 실장에게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가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최근 그의 발언을 반복하지 말아달라고 말해달라”며 “부동산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환경영향평가를 정말 싫어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맥매스터는 임명되자마자 그의 외교·안보팀과 논의를 거친 뒤 “북한 정권이 억지력만을 위해 핵무기를 원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를 트럼프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맥매스터는 “한반도를 (적화) 통일하는 것이 김정은의 (최종) 목표라고 보고했다”며 “(이를 들은 트럼프는) 북한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지원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초기 행정부의 대북(對北) ‘최대 압박 전략’(Maximum pressure campaign)의 윤곽은 이렇게 드러났다”고 했다.
이후로도 트럼프는 수시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여러 차례 “김정은과 기꺼이 만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맥매스터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에 서두르지 말고 대북 제재를 섣불리 해제해서도 안 된다고 보고했고 트럼프도 동의했었다”면서도 “일관성은 그의 강점은 아니었다”고 했다. 북한의 압박을 강조하다가도 김정은과의 ‘톱다운’식 대면 회담의 필요성을 꺼내면서 입장이 수시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실제 트럼프는 김정은을 세 차례 대면했고 최근 대선 국면에서도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수시로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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