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아직도 그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국제적으로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적어도 이 동네에선 투표 결과를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되지 않겠나.”
3일 찾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카운티의 대형 박람회장 ‘버틀러 팜 쇼’에선 하얀색 차단봉을 치고 보행자와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지난 7월 13일 이곳에서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 도중 20세 백인 남성 토머스 매슈 크룩스의 총에 맞았다. 박람회장 관계자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우리의 역할은 장소를 제공해 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가 연설한 잔디밭과 크룩스가 지붕에 올라 총격을 가한 100m 거리의 건물 모두 잘 정돈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에도 의회 특별 조사단이 방문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버틀러 카운티는 피츠버그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약 한 시간 달리면 나오는 인구 20만명의 배후 지역이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대선 직전 트럼프가 이곳을 다시 찾는 ‘왕의 귀환’이 언제쯤일지에 다들 관심이 크다”면서 “(우리 카운티에선) 트럼프가 70% 넘는 ‘역대급’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선 트럼프가 65.6%(7만4359표)의 득표율로 조 바이든 대통령(33.1%·3만7508표)을 압도했다.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의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곳이다.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권에서는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우세하지만 나머지 60여 카운티에서는 트럼프가 압도하는 이중 구도다. 트럼프가 이 주에서 승리하려면 버틀러 카운티를 비롯한 교외 유권자들을 결집시키고 더 많이 투표장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지난달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와 대담하던 중 버틀러 카운티를 대선 직전 10월에 다시 찾겠다고 언급하자 카운티 보안관 등이 “복귀를 염원하는 이가 많다” “언제든 비밀경호국에 협조할 것”이라며 환영하고 나서기도 했다.
초유의 총격 사건 이후 버틀러 카운티는 “어쩌면 최대 접전지 펜실베이니아 전체 투표 결과를 움직일 열쇠가 될 수 있는 곳”(월스트리트저널)으로 주목받고 있다. 버틀러 카운티에서 피츠버그 도심까지 가는 약 50km 구간에서 모자, 티셔츠, 성조기 등 이른바 트럼프 굿즈(기념품)를 파는 가판을 다섯 개나 볼 수 있었다. 트럼프 캠프와는 무관하게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가판에는 “투표하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자” 같은 문구가 걸려 있었다.
70대 백인 여성 린다씨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우울한 동네로 변해가고 있다”며 “우리의 정서를 정확하게 아는 트럼프만이 경제를 번성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물건을 고르던 중년 백인 여성 두 명은 “우리는 그네처럼 양쪽을 오가는 ‘스윙(swing) 유권자’이지만, 펜실베이니아가 고향이라고 자랑하는 바이든이 4년 동안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바이든의 아바타(꼭두각시), 하수인 같은 해리스의 또 다른 4년은 필요 없다”고 했다.
제조업 쇠락에 따른 경제 침체, 고령화 등은 버틀러 카운티를 비롯한 주 내 대부분 지역이 공통적으로 마주한 현실이다. 평일 점심시간 직후에 찾은 버틀러 카운티 중심가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문을 닫았을 정도로 공실(空室)이 심각했다. 그나마 영업하는 음식점, 커피숍, 상점도 문 여는 시간이 하루 여섯 시간도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출입문엔 ‘점포 임대’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손님들은 나이 지긋한 이가 많았다. 신용카드는 쓸 수 없는 구식 요금 측정기가 늘어선 주차장은 대부분 공짜였다. 약국형 편의점에선 면도기·샴푸 같은 생필품 진열장에도 자물쇠를 걸어놓고 있었다. 가게 점원 올리씨는 “몇 년 전부터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약물에 취해 귀찮게 하는 노인들이 많아져 어쩔 수 없이 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유세마다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 시추를 늘리자는 구호)을 외치며 화석 에너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였다. 셰일 가스 산업이 발달한 펜실베이니아 북부·동남부는 약 20만명의 토지 소유주가 60억달러 넘는 토지 사용료를 챙겼다는 분석(2022년 기준)이 나온 곳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프래킹(고압의 액체로 암석을 파쇄하는 시추 기술) 공법이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트럼프 측은 과거 환경오염을 이유로 프래킹 반대 입장을 밝힌 해리스가 이제 와서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며 집중 공략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프래킹 관련 일자리는 10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카운티 청사 앞 공원에서 만난 레이먼드 크레이낙씨는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한 해리스의 진짜 생각이 뭔지 모르겠다”며 “셰일 가스가 없으면 먹고살기 힘든 곳이 많은데 그걸 막겠다고 하면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