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사회의 ‘빌런(악당)’으로 몰린 푸틴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려 기만전술을 벌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백악관은 선거 개입을 중단하라며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는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대선 때 소셜미디어에 트럼프에게 유리한 거짓 정보를 대량 유포하는 등 미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을 반복해서 받아 왔다.
푸틴은 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해 “우리가 선호하는 후보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그러나 그가 불출마하며 지지자들에게 해리스 지지를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조롱하는 해리스 특유의 호탕한 웃음에 대해 “매우 표현력이 있고 전염성도 높다”며 “그(해리스)가 잘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도 했다. 이어 “트럼프가 재임 중 어떤 대통령보다도 많은 제재를 러시아에 부과했다. 해리스는 그런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신미국안보센터(CNAS)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부과한 제재(273건)는 오바마 2기(485건) 때보다 적어 이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푸틴의 발언은 전날 미 재무부가 “소셜미디어에서 친(親)러시아 메시지를 확산하고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며 러시아 국영 방송사 RT의 보도국장 등 개인 열 명과 기관 두 곳을 신규 제재 명단에 올린 데 이어 나왔다. 푸틴은 이날 “미국의 새 대통령은 미국 시민이 선택하는 것이고, 러시아는 미국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그의 발언은 의도적인 선거 개입으로 해석됐다. 푸틴이 트럼프와 오랜 친분을 과시해 온 데다,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발언하며 조롱하듯 묘한 웃음을 띠기까지 해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CNN은 “푸틴의 발언은 지지의 대상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미 국내 정치라는 ‘냄비’ 속을 휘저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MSNBC는 “미 대중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시도로, 푸틴이 해리스의 웃음까지 언급한 건 이번 대선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고도의 낚시질(trolling)”이라고 했다.
정작 ‘지지 선언’ 대상이 된 백악관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푸틴의 발언을 ‘선거 개입’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푸틴의 발언이 나온 후 “푸틴은 (대선 후보 중) 어느 쪽도 선호해서는 안 되고, 우리 선거에 대한 발언을 중단해야 한다”며 “다음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는 유일한 사람은 미국 국민이다. 대선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고 간섭을 중단하면 정말 고맙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푸틴의 발언이 초래한 소동을 즐기는 듯 반응했다. 그는 뉴욕의 한 경제 행사에 참가해 “(해리스를 지지한다는 푸틴에게) 내가 모욕을 당한 것인지, 그가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에서 비난을 받는 푸틴의 지원이 정적(政敵) 해리스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이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역시 “발언 맥락이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라”며 푸틴을 거들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그(푸틴)는 국제 현안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답변을 하는데, 말하는 속뜻이 뭔지 궁금한 외국 사람들은 직접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푸틴을 비롯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권위주의 지도자들과 “잘 지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는 이날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미국 달러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러시아와 (종전 방안에 대한)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 캠프의 이언 샘스 대변인은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를 겨냥해 “이번 선거에서 전 세계 독재자와 깡패들이 누구를 선호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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