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州)에 있는 인구 6만명 안팎의 소도시 스프링필드가 안팎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지난 10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다. 12일 시청·학교 등 주요 시설에 테러 위협이 일어나 건물이 폐쇄됐고, 시민과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트럼프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보수 진영이 이를 불법 이민 문제를 쟁점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어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스프링필드 당국은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시청 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오전 8시30분 모두 대피했다”며 “자신이 스프링필드 출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아이티 이민 문제와 관련해 당국에 불만을 언급했다”고 했다. 테러 위협은 풀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도 이뤄졌는데 이 때문에 학생들이 인근 고등학교로 대피했고, 소방 당국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하교시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시 당국은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는 직원과 주민의 안전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라 했지만 동네 곳곳에서 어수선한 모습이 종일 계속되고 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오물을 확산시키는 일이며, 주민들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혐오 발언(hate speech)”이라고 비판했다.
롭 루 시장은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견·반려묘를 잡아먹는다는 소셜미디어의 괴담에 대해 “믿을만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라고 여러 차례 반박했다.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 역시 “인터넷은 가끔 이상하다” “우리가 시장의 말을 믿어야 한다 생각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스프링필드엔 최근 3년 동안 유입된 아이티 이민자 출신이 약 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임시 보호 신분을 부여받은 이들이 일자리가 많고 주거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하이오를 택한 것인데, 이번 괴담이 주민들 간 갈등과 차별을 조장하고 있기도 하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한 이민자 남성은 NBC에 “동료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내가 고양이를 먹는지 물어본다”고 했다. 공화당 출신인 데이비드 요스트 오하이오주 법무장관은 아이티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연방 정부가 지역 사회에 이민자를 무제한으로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괴담에 그쳤지만, 이번 해프닝은 보수 진영에서 불법 이민의 심각성을 상기하는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사인 찰리 커크 터닝포인트USA 대표는 X(옛 트위터)에서 “미국이 제3세계의 쓰레기장이 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트럼프가 더 많은 인기를 얻는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푸드 스탬프와 보조금 등을 지원받는 아이티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원주민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토로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무면허 운전을 통해 도로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이민자들이 지역 사회에 급격하게 유입되며 원주민은 쫓겨난다는 고발도 소셜미디어에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자신이 스프링필드에 거주 중이라 밝힌 한 흑인 여성은 틱톡에서 “더 이상 여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그들은 진짜로 동물의 머리를 베어내고 있는데 여러분은 이걸 농담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