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몸짓이었다.”
지난 10일 밤 미국 대선 TV 토론을 지켜본 전직 미국 FBI(연방수사국) 프로파일러 조 나바로가 내놓은 분석이다. 이날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토론 내내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도발했다. 트럼프는 토론 초반에만 해도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중반에 들어서면서 여러 번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미 CNN 등은 “과거 어떤 대선 토론 보다도 ‘바디랭귀지(몸짓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FBI에서 25년 넘게 근무했고 은퇴 이후엔 몸짓 및 행동 등을 분석한 책도 여럿 출간한 나바로는 12일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게재한 분석 글에서 “(토론과 같은 정치 행사에서) 말은 진실을 왜곡하기 마련이지만 몸짓은 진실을 말한다”며 “눈썹을 치켜뜨거나 입술을 굳게 다무는 등의 행동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했다. 해리스와 트럼프가 이번 토론에서 보였던 주요 몸짓들과 이에 대한 나바로의 분석을 소개한다.
◇해리스의 악수
10일 저녁 9시 해리스와 트럼프가 이날 처음으로 대면(對面)했다. 대선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에 마련된 ABC 방송 스튜디오에서 열린 토론장에 해리스와 트럼프가 나란히 등장했다. 그런데 해리스가 먼저 트럼프 쪽 연단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외 설전’을 주고받고 있는 두 후보가 악수를 하지 않고 토론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앞서 지난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간 토론 당시 둘은 악수하지 않았다.
나바로는 “해리스는 무대 위로 걸어 나와 손을 내밀며 (트럼프에게) 자신을 소개했다”며 “트럼프는 마지 못해 응하는 모습이 노출됐다”고 했다. 그는 “악수는 단순한 인사 그 이상이다. 상대방에게, 그리고 특히 (방송) 토론에선 미국 국민에게 정중함과 예의, 존중을 전달할 수 있다”며 “해리스가 악수를 시작했을 때 통합의 메시지와 함께 트럼프와 맞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사인을 보냈다”고 했다.
해리스는 악수 이후 연단으로 향하면서 큰 미소를 지었다. 나바로는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고 이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긴장 해리스, ‘목’에서 드러났다
해리스는 그간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아, 실제 토론에서 트럼프의 ‘거친 언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해리스는 이날 토론에서 첫 질문을 받았을 때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나바로는 “목에 상당한 긴장감이 느껴졌다”며 “눈에 띄게 침을 삼켰고 후두 갑상선 연골이 많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는 “비언어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종류의 긴장은 자신감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해리스의 긴장이 사라지는 데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에 비해 트럼프는 초반에는 긴장을 덜하고 더 침착해 보였지만 이후 수차례 성난 표정과 고성(高聲)을 드러내며 평정심을 잃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나바로는 전했다.
◇해리스의 눈 쳐다보지 않는 트럼프
나바로는 “트럼프가 해리스를 직접 쳐다본 적이 거의 없다”며 “해리스가 말할 때 그는 정면만을 응시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감을 표출하려면 상대방과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트럼프가 90분 동안 눈을 맞추지 않은 건 무관심, 무례함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심지어는 해리스를 쳐다보는 것 자체가 자신을 기울게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도 보였다”고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리스는 트럼프가 연설할 때 트럼프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나바로는 “해리스는 트럼프와 눈을 맞추고, 그에게 손을 내밀고, 그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했다.
◇치켜올린 해리스의 턱
토론 내내 해리스는 트럼프의 발언에 수차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턱을 숙이면서 그를 응시하는 방법으로 트럼프의 발언이 ‘사실과 멀다’는 느낌을 줬다. 트럼프의 발언 중간 중간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자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뒤로 젖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나바로는 “‘당신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라고 행동을 통해 말하는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눈길을 끌기 위해 고안된 행동”이라고 했다. 이어 “50년간의 대선 토론에서 이런 행동을 본 적이 없다”며 “트럼프의 발언이 터무니없다고 시청자들에게 유도하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의도대로 먹혔다”고 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오하이오주(州) 스프링필드에 사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사실과 다른 발언을 내놓자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바로는 “트럼프의 심각한 표정과 어조는 해리스의 웃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며 “이를 통해 트럼프의 신뢰성이 급속도로 약화됐다”고 했다. 이어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매우 심각한 검사 측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유머와 웃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검사 출신인 해리스가 법정에서 터득한 기술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했다.
◇트럼프의 다문 입술
나바로는 “트럼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는 특이한 행동을 자주 보인다”며 트럼프의 앙다문 입술을 지적했다. 그는 “이 행동은 누구를 싫어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행동으로, 트럼프의 일상적인 ‘제스처’가 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해리스의 비판에 극적으로 과장된 미소를 지으면서 눈썹을 높이 치켜 올리기도 했다. 나바로는 “이는 비꼬거나 경멸이 담긴 무시하는 제스처였다”며 “보통 편한 미소에서는 광대 근육이 입꼬리를 당겨 자연스럽게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며 “그러나 트럼프는 입술을 굳게 다문채로 미소를 지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데 쓰였다. 다른 정치인에게서 보기 힘든 트럼프만의 특징”이라고 했다.
토론 종료 후 CNN 여론조사에선 63%가 ‘해리스가 이겼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이겼다’는 응답은 37%였다. 45%는 해리스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응답해 호감도가 토론 전(39%)보다 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부동층 유권자 중 해리스의 호감도가 30%에서 48%로 크게 올라갔다. 반대로 트럼프는 호감도가 토론 전 41%에서 39%로 다소 내려갔다.
토론회 직후 전국의 등록 유권자 1405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가 이겼다고 응답한 사람은 53%로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답한 응답자(24%)의 2배가 넘었다.
트럼프는 1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더 이상의) 토론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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