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2일 오후 미국 방문의 첫 일정으로 펜실베이니아주(州) 스크랜턴에 있는 육군 탄약 공장을 찾았다. 이 공장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게 300만발 이상을 지원한 155mm 포탄을 생산하는데 근로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우리는 더 많이 필요하다”며 ‘전쟁 승리’를 위한 미국의 추가 지원을 당부했다. 다만 펜실베이니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이자 이번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경합주고, 우크라이나·폴란드계 인구가 상당해 정치적인 해석을 낳고 있다.
이날 일정에는 더그 부시 육군 부장관, 빌 라플란트 국방부 무기구매담당관과 함께 민주당 소속인 조시 샤피로 주지사가 동행했다. 젤렌스키는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 뒤 27일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각각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젤렌스키는 바이든에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거리 무기 사용을 허용하면) 미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전쟁을 벌일 것”이라 경고한 상태다.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의 최대 경합주로 정가에선 “펜실베이니아에서 웃는 사람이 마지막에 웃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4년 전 대선에선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차가 8만표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해리스가 우크라이나·폴란드 등 동유럽계 미국인을 ‘스윙 보터’로 보고 공을 들이고 있어 젤렌스키의 방문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보·보수를 가르는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캠페인 행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이지 아니지도 않은 행사”라고 했다. 이날 우크라이나계 이민 1세대들 일부가 나와 국기를 흔들며 젤렌스키의 차량 행렬을 맞았다.
해리스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이고 푸틴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트럼프의 면모가 동유럽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일 TV토론에서 트럼프에게 “여기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80만 명의 폴란드계 미국인에게 당신이 푸틴의 호의를 사기 위해 얼마나 빨리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것인지 말하지 않냐”고 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수퍼팩(super pac·특별 정치활동위원회)도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3개 경합주에서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을 비난하는 TV·디지털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인구 통계를 보면 펜실베이니아 인구의 약 5%인 70만명이 폴란드계고, 우크라이나계도 12만2000명이나 된다. 지난 대선의 승부가 8만 표차로 갈린 점을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인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상당수 유권자들이 미국의 천문학적 지원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어 이런 ‘도박’이 주효할 것인지는 전망이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