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소속인 벤 카딘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연합뉴스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를 활용한 범죄가 각국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에 외교적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연방 의원이 우크라이나 고위 인사를 사칭한 딥페이크에 속아 넘어갈 뻔한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세마포는 상원 외교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벤 카딘 의원을 향한 딥페이크 공격이 발생해 연방수사국(FBI)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28일 보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전 우크라이나 외교 장관을 사칭한 인사가 카딘에게 접근해 화상 통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대화 상대는 정교한 딥페이크였다는 것이다.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미 외교 정책의 방향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딘과 외교위 소속 보좌관들은 지난주 쿨레바로 추정되는 인물과 화상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 통화에서 쿨레바를 사칭한 인사가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때리는 것을 지지하느냐’고 묻는 등 민감한 사항에 답변을 유도했다고 전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 한도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러시아 측은 이 경우 핵 보복을 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상대방이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재차 답변을 유도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카딘 의원 측은 의심하게 됐고, ‘가짜 쿨레바’임을 뒤늦게 알았다. 카딘은 성명에서 “한 악의적 행위자가 기만적인 시도를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FBI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구체적인 배후는 오리무중인 상태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중 러시아가 벌이고 있는 선전 활동과 행태가 유사해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이 일이 일어난 뒤 의회 보안국에서 각 상원 의원실에 “외국 고위 인사를 사칭해 공식 화상 통화를 요청하는 위협 행위가 있었다”며 ‘사이버 보안 경고’를 전달했다. 세마포는 “카딘에게 일어난 일은 정교하고 믿을 만한 일이었으며 다른 의원들에게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대적 외국 정부와 연계된 행위자든, 단순한 장난꾼이든 악의적 영향력 행사의 일환으로 AI(인공지능)가 점점 더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이번 화상 통화에는 카딘과 외교위 직원 다수가 참석했는데, 이들이 모두 속았을 정도로 그 기술이 정교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시도와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선거운동 교란 가능성에 대한 미국 내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