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외교의 흔적이 깃든 워싱턴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미국 국가사적지(NRHP)에 공식 등재됐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일제강점기 한인들이 국권 회복의 결의를 다졌던 독립의 상징이자, 한미 관계의 싹을 틔운 ‘한미 우호의 요람’으로 알려진 곳이다. 우리 정부가 소유한 한국 역사의 기념비적 장소가 미국의 국가사적지로 처음 등재된 것이다.
30일 오전 백악관에서 1.5km 떨어진 워싱턴 북동쪽 로건 서클 역사지구. 이날 이곳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선 미국국가사적지에 공식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동판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 참석한 조현동 주미대사는 “양국의 외교관계는 142년 전인 1882년 조미수호 통상조약 체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140년 전 외교관으로 일했던 선배들은 140년 뒤 한국이 미국의 가장 가깝고 없어서는 안 될 동맹국 중 하나가 될 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찰스 샘스 미 국립공원청장도 “이 건물은 한미 관계의 주요한 사건들을 목격해왔고, 방문객들이 덕분에 이곳에서 역사에 대해 더욱 깊이 배울 수 있다”면서 “국가사적지로 등재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했다.
공사관 건물은 본래 1877년 건립된 미 해군 출신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세스 L. 펠프스(1824~1885)의 저택이었다. 1887년 조선 초대 주미전권공사인 박정양(1842~1905)이 미국에 특파되고 1889년 2월부터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강탈된 1905년까지 16년 동안 조선의 외교활동 공간으로 활용했다. 고종은 당시로서는 거액인 2만5000달러를 들여 건물을 매입했다. 일제는 그러나 이후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한 후 5달러에 공사관을 강제 매입해 되팔았다.
1945년 8월 국권을 되찾았지만, 공사관의 소유권을 되찾진 못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미(在美) 한인사회에서 건물을 되찾자는 논의가 시작됐고, 2012년 10월 국가유산청·문화유산국민신탁이 약 70억원에 재매입했다.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 2018년 5월 역사전시관으로 개관·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19세기 워싱턴의 외교공관의 원형(原型)을 간직한 채로 있는 유일한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