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달여 앞둔 최근 TV 인터뷰에 출연하고 회고록을 출간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 이슈에 대해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낙태권을 지지하는 멜라니아 여사가 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배우자 멜라니아(54) 여사가 선거를 앞두고 평소와 다른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 도전에 반대해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멜라니아는 지난주 TV 인터뷰에 2년 4개월 만에 출연한 데 이어 다음 주 회고록도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인 여성의 낙태권·생식권에 대해 트럼프가 경쟁자인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열세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멜라니아가 책과 영상을 통해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해 특히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회고록 ‘멜라니아’를 입수해 검토한 결과 공화당과 트럼프가 주장하는 ‘임신 15주 이후 낙태 금지’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책에 포함됐다고 2일 보도했다. 멜라니아는 회고록에 “여성이 임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야 하며 정부의 어떤 압력이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적었다. 멜라니아는 이어 3일 X(옛 트위터)에 “개인의 자유, 모든 여성이 보유한 이 권리에 대해선 타협할 여지가 없다. ‘나의 몸, 나의 선택’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회고록 홍보 동영상을 올렸다. ‘나의 몸, 나의 선택’은 낙태권 옹호자들이 내세우는 구호다.

트럼프가 대통령 시절 대법관 세 명을 임명하며 보수 성향으로 기운 미 연방대법원은 2022년 연방 차원에서 낙태권을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고 트럼프는 이를 치적으로 내세워왔다. 트럼프는 박빙 구도 속에 일부 강경 보수들처럼 ‘낙태 전면 금지’를 주장하진 않으면서 “낙태 문제는 각 주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낙태 문제에 대해 이민자나 우크라이나 지원 등과 달리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데는 멜라니아의 영향도 있었으리라는 관측이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멜라니아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낙태와 관련해 더 부드러운 인상을 전달하려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나왔다”라고 전했다.

멜라니아는 지난달 26일엔 약 2년 4개월 만에 방송 인터뷰를 가졌다. 멜라니아는 폭스뉴스에 나와 “남편이 두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난 것은 기적이다. 나라가 그를 정말 필요로 하는 것 같다”며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했다. 또 “민주당과 주류 언론들이 그(트럼프)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낙인찍고 흉악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남편에게 터무니없는 폭력이 가해졌다는 건 충격적”이라고 했다. 멜라니아가 암살 시도에 대한 언론 보도를 놓고 “보도가 며칠간 이어지더니 모든 것이 조용해져 많은 의문이 생겼다”고 음모론을 제기하자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등 친(親)민주당 매체들이 일부러 기사를 축소 보도했다는 뉘앙스다.

멜라니아는 최근 활동이 늘면서 구설에도 올랐다. 공화당 정치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3억원이 넘는 고액 출연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출판사가 CNN에 인터뷰 조건으로 고액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멜라니아는 지난 4월 보수성향 인권 단체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 참석한 뒤 23만7500달러(약 3억1700만원)를 받은 사실이 최근 CNN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가 공개한 재정 보고서엔 이 돈이 ‘연설 대가’로 표기됐는데, 선거를 앞둔 대선 후보의 배우자가 정치 행사에 참석하고 출연료를 받은 것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울러 3일엔 멜라니아의 회고록 출판사가 CNN에 인터뷰를 대가로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요구했다는 CNN의 추가 보도가 나와 새로운 논란에 휩싸였다. CNN은 이런 제안을 거절했는데 보도 이후 출판사 측은 “멜라니아는 몰랐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슬로베니아 출신인 멜라니아는 모델 출신으로 트럼프와는 2005년 결혼해 아들 배런을 뒀다. 결혼 전 화려한 모델 경력과 달리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후엔 역대 미국 대통령 배우자 중 보기 드물게 대외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은둔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렸다. 지난 7월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공식 추대된 밀워키 전당대회 때 현장엔 나타났지만 지지 연설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1기(2017~2021년) 땐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백악관 고문으로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이 막후에서 인사 등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에릭의 배우자인 라라는 ‘선거 지휘부’인 전국위 공동의장 자리를 꿰차 공화당의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