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7월 24일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네타냐후는 대부분의 미국 정치인보다 워싱턴 게임을 더 잘 알고 있다.” (전직 이스라엘 외교관 알론 핑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1주년을 맞은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비상한 정치력에 주목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공과 맞물려 네타냐후가 국내에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11월 5일 미국 대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레거시(legacy·유산)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가 그에게 주어진 목숨을 다 썼다고 생각했지만, 뒷주머니에 몇 개의 목숨을 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폴 살렘 중동연구소 부소장)는 얘기까지 나왔다.

미국 리더십이 ‘비비(bibi)’란 별칭으로 부르는 네타냐후는 세 차례(1996~1999년, 2009~2021년, 2022년~) 총리로 재직하며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했다. 1996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그와 회담을 가진 뒤 보좌관에게 “도대체 여기 초강대국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정도로 거침이 없었고, 이스라엘의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회유·압박도 뭉개가며 행동했다. 이는 바이든도 마찬가지인데 지난해 10·7 사태 이후 휴전 협상과 함께 이·팔이 공존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주장해 왔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확전(擴戰) 자제를 주문하고 있지만 FT는 “최근 일을 보면 네타냐후가 바이든이 사석에서 자신에 촉구하는 어떤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만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AFP 연합뉴스

올해 3월 미 조야(朝野)에선 유대계이자 민주당 1인자인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네타냐후를 향해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이스라엘의 최대 이익보다 우선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새로운 선거를 요구한 것이 큰 화제였다. 가자지구에서의 인도주의 위기로 미국 내 여론까지 악화하자 중동의 맹방 총리를 ‘평화의 장애물’로 지목한 건데, “선거를 통한 교체”까지 언급해 75년 미·이스라엘 관계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란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리아 다마스쿠스 소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등을 사살하며 전선을 넓혔다. 본인이 직접 미 언론에 출연해 바이든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란의 보복이 뒤따르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방위 공약은 철통같다”며 거들 수밖에 없었고, 7월 네타냐후는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며 50번이 넘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불과 몇 개월 전 네타냐후를 향해 독설을 쏟아냈던 슈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워싱턴은 이제 네타냐후의 다음 행동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이란 내 석유 또는 핵시설 타격 가능성까지 제기된 가운데, 이게 실현될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박빙 구도를 흔들만한 메가톤급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워싱턴의 민주당원들 사이에선 바이든이 네타냐후를 견제하지 못한 것이 박빙의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뇌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네타냐후가 이란 국민들을 겨냥해 “자유를 되찾는 순간이 빨리 올 것”이라며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체제 변화)를 시사하자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이란의 위협을 무력화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며 재빠르게 보조를 맞추기도 했다. 바이든 입장에선 네타냐후의 강경 드라이브로 중동 정세가 지금보다 더 악화할 경우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대통령직이 ‘실패’로 판명 날 수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7월 25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