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하칸 쉬퀴르가 지난 4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쉬퀴르는 한일월드컵 로고가 새겨진 하얀색 머그컵을 아직도 갖고 있었고, 한국팀 응원 구호인 '오! 필승 코리아'의 멜로디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은중 특파원

“당시 제가 넣었던 기록적인 골보다도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은 것은 그때 당시 우리가 ‘형제의 나라’라면서 튀르키예 국기를 흔들던 한국 축구팬들의 모습입니다.” 튀르키예의 축구 국가대표 출신 하칸 쉬퀴르(53)는 4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쉬퀴르는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 당시 11초 만에 벼락 같은 골을 넣은 튀르키예 공격수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월드컵 역대 최단 시간 안에 넣은 골이란 기록도 이때 얻었다. 월드컵의 기록과 역사를 얘기할 때 매번 소환되는 장면이다. 당시 중앙 수비수를 맡았던 홍명보 현 국가대표 감독이 실책을 범해 결국 2대3으로 패배했다. 이렇게 한국을 이겼고, A매치 112경기에서 51골을 기록하며 튀르키예의 ‘축구 영웅’ 소리를 들었던 그가 미국에서 우버 기사로 일한다는 외신 기사가 최근 소셜미디어에 다시금 퍼지면서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선 큰 화제를 모았다.

2002 한일월드컵 3·4위전이 열린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튀르키예팀이 한국에 3대2로 승리하자, 당시 튀르키예 공격수였던 하칸 쉬퀴르가 태극기를 들고 한국 관중에게 감사 표시를 하고 있다. /Action Images/로이터

쉬퀴르는 킥오프 11초 만에 기록한 득점에 대해 “한국에 미안하지만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 같은 골이었다”며 “그(홍명보)가 나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다. 온 마음을 다해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여전히 한일월드컵 로고가 새겨져 있는 흰색 머그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당시 한국 응원 구호였던 ‘오! 필승 코리아’의 멜로디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에 대해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는 아니지만 잘 알고 있고, 그의 플레이는 정말 훌륭하다”고도 했다.

쉬퀴르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팰로앨토에서 살고 있다. 그는 본래 2007년 축구에서 은퇴하고 이듬해 정계에 입문해 2011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집권 정의개발당(AKP)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후 에르도안의 독재 노선과 부패를 비판하다 반(反)정부 인사로 몰렸다. 2016년에는 실패로 돌아간 군부 쿠데타의 배후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 2015년 배우자, 자녀 3명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한동안 우버 기사로 일했다. 이후엔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했지만 신변 문제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지금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유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축구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쉬퀴르는 “튀르키예는 서방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민주주의도 발전 궤도에 오른 상태였다”며 “정치인으로 축구와 스포츠 발전을 위한 많은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의 이름값만 이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가 망명하자 암 투병 중이던 부친이 한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고 한다. 쉬퀴르는 “지난 9년 동안 튀르키예에 갈 수 없었다. 가끔 ‘페이스타임’으로 (가족들과)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수백 명의 언론인을 투옥했을 정도로 자유를 탄압하는 북한과 다름없는 나라가 됐다”며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리더들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튀르키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이 끝난 뒤 하칸 쉬퀴르(가운데)를 비롯한 한국과 튀르키예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유튜브

쉬퀴르에게 여전히 한국은 튀르키예에 환대를 베푼 나라로 기억된다. 그는 “나의 골이나 어시스트보다도 우리의 우정이 기억에 남는다”며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찬란했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6·25 전쟁 때 유엔 참전국 중 넷째로 많은 인원(2만1212명)을 한국에 파병했고, 1000여 명이 전사했다. 당시 3·4위전을 앞두고 이런 사실이 다시 회자되면서 한국팀 응원단인 ‘붉은 악마’는 태극기와 함께 튀르키예 국기를 내걸었다. 경기가 끝나자 승패에 상관 없이 양국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8년 뒤 방한한 압둘라 귤 당시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2002년 응원을 잊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쉬퀴르는 “나는 부친의 권유로 축구를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고 좋은 삶을 살았다”며 “그라운드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목표는 “사랑하는 조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어느덧 대학생이 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쉬퀴르는 “‘한국’ 하면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다”면서 “나도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도 했다.

하칸 쉬퀴르(왼쪽)와 배우자 베이다 쉬퀴르.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