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가 배출한 대표적 여성 정치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 /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부상과 맞물려 해리스의 정치적 고향이자 ‘진보의 아성’인 샌프란시스코가 여성 정치 리더십의 요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약 80만명인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마약, 절도, 폭력, 총기 사고 등 범죄의 온상이 됐고 보수 진영에선 이 도시를 매번 ‘살아있는 지옥’에 비유했다. 그러나 “가로·세로 7마일(약 11km)에 불과한 도시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치 지도자가 배출됐고, 그들이 대부분 여성인 건 전례가 없는 일”(LA타임스)이라는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2003년부터 8년간 검사장을 지냈다. 2021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에 취임했고, 올해 11월 대선에서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다. 이 외에도 상원에서 내리 6선(選)을 하며 숱한 ‘여성 최초’ 기록을 써 내려간 고(故)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 여성 최초로 연방 의전 서열 3위인 하원 의장을 지내고 11월 20선에 도전하는 낸시 펠로시(84) 하원 의원, 상·하원에서 35년 활동한 뒤 2017년 해리스에게 상원 의원 자리를 물려준 바버라 복서(84) 전 의원이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다. 신진 세대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여성 부지사 엘레니 코날라키스(58)는 2026년 주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현직 샌프란시스코 시장도 흑인 여성인 런던 브리드(50)다.

그래픽=양인성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복합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도시엔 인구가 폭증하며 성별, 인종, 국적, 빈부를 막론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유입됐다. 거리는 각자의 권익을 외치는 해방구가 됐고 무대 뒤에 있던 활동가, 기금 모금가 등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복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모든 곳에서 모였고, 자격을 갖춘 여성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비옥한 땅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파인스타인은 1960년대에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흑인 민권 시위 현장에 나간 것이 정치 경력의 시작이었다. 해리스·펠로시 등도 유력 정치인의 선거 캠프에서 전략을 세우거나 비영리 단체 모금 활동을 하며 정치인으로서 체급을 키웠다. 해리스는 지난해 파인스타인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샌프란시스코 정치는 맨손으로 하는 거친 스포츠 같았다”고 했다.

서로 반목하지 않고 끌어주는 특유의 문화도 한몫했다. 사업가 남편을 따라 뉴욕에 갔다가 197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다섯 자녀를 키우는 데 전념하던 주부 펠로시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살라 버턴 전 하원 의원이었다. 펠로시도 중앙 정치에 진출한 뒤에는 애나 애슈, 조 로프그린 등 지역의 후배 여성들이 의회에 입성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 “여성의 완전한 정치 참여보다 국가 운영에 더 건전한 일은 없다”는 게 펠로시의 지론이다. 해리스 역시 2003년 민주 진영의 여성 ‘큰손’이자 노스페이스 창업자였던 수지 톰킨스 부엘의 눈에 들었고, 부엘의 비영리단체 이사로서 인맥을 쌓으며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7년엔 복서의 자리를 물려받아 상원 의원이 됐다. 이후 브리드 등 수많은 후배 여성 정치인의 ‘멘토’를 자처하며 직간접적 조언을 해왔다.

샌프란시스코 여성 정치인들의 부상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해리스의 전 연인 윌리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낸 캘리포니아 정가의 거물이었다. 파인스타인은 1960년대에 브라운을 만나 주택 문제 등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고, 펠로시도 모금 활동가이자 전략가로서 브라운을 도운 적이 있다. 해리스는 1994년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브라운과 교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만에 끝났지만, 브라운이 정치적 멘토가 돼 해리스가 고위직에 임명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는 훗날 주 법무 장관, 상원 의원, 부통령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시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