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가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간 전쟁 및 미국 대통령들의 대응 등을 담은 책을 출간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우드워드는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현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퓰리쳐상을 두 번 받은 그는 닉슨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미 대통령 9명을 내리 대면 인터뷰했다. 81세 나이에도 끊임없이 취재하고 책을 위해 글을 쓰는 그는 ‘대통령의 사가(史家)’로도 불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드워드가 15일 발간할 저서 ‘전쟁’(war)의 일부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20년 코로나 테스트기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비밀리에 보냈다고 8일 보도했다. 당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었던 때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테스트기 물량이 부족했었다. 자국민들도 테스트기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적성 국가 리더에게 테스트기를 보내는 데 대한 여파를 우려한 푸틴이 트럼프에게 “(테스트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충고했다고 WP는 전했다.

우드워드는 이 책에서 트럼프가 퇴임한 이후에도 푸틴과 7차례 통화를 갖고 친분을 유지해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푸틴이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도 국제 정세를 두고 트럼프와 논의했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트럼프 캠프는 보도가 나오자 성명을 내고 “우드워드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 테스트기를 보낸 적이 없다’ ‘푸틴과 통화한 적이 없다’며 구체적인 반박은 하지 않았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워싱턴포스트

◇인쇄 전날까지 원고 수정…”마라톤 뛰듯 집필”

1972년 공화당 닉슨 측은 재선을 위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불법 도청을 시도했다. 닉슨은 각종 선거 공작 계획을 만들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에드먼드 머스키와 조지 맥거번의 사무실을 도청하거나 허위·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비밀 전담팀을 구성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우드워드와 선배 칼 번스틴은 이를 특종 보도했다. 3년에 걸친 이들의 추적 보도로 닉슨은 1974년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임기 중 사퇴했다. 그와 번스틴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52년이 지난 현재 우드워드는 현재 WP의 부편집인으로 있다. 명목적인 직위로 WP에서 정기적으로 기사·칼럼을 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저술 작업에 한창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취재 과정을 다룬 책 ‘대통령의 모든 사람들’(1974년)을 시작으로 이번에 출간되는 ‘전쟁’까지 포함해 총 23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는데 이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AP는 최근 “퓰리처를 두 번이나 받은 누구나 아는 명(名)기자이지만 안주하지 않고 워싱턴 정가의 가장 힘 센 사람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펴내는 책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확전을 막으려는 미국 대통령의 분투기를 담았다. 작년 10월 7일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공격 이후 우드워드는 중동 지역도 주요 주제로 추가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고위 참모들 및 당국자들과 수백 시간이 넘는 시간을 인터뷰했다고 CNN은 전했다.

돌발 상황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자 그의 고뇌와 사퇴 결정을 둘러싼 ‘비화(祕話)’를 취재해 책에 포함시켰다. 우드워드는 책이 인쇄되기 전날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막판 몇 달 동안은 마라톤하듯 원고를 수정했다”며 “출판사도 마지막 순간까지 (책 수정을 허용하면서) 그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종종 주변에 “(매일 뉴스를 다루는) 일간지 기자에 비해 (긴 호흡으로) 현대사를 쓰는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악시오스는 “그러나 그가 출간하는 이번 책은 수십 년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는 일부 폭로들이 들어있는 ‘실시간 역사’에 가깝다”며 “52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그는 위기 상황에서 백악관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 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그는 지난 2018년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세계총회 연설에서 특종 비결은 온라인·전화가 아닌 ‘대면 취재’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거리로 나가면 답이 있다. 사람들과 말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얘기를 해줄 거다. 듣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해 밥 우드워드가 출간한 책들. /인터넷 캡쳐

◇'폭로’에 左右없어

이런 그의 명성 때문에 과거 대통령들은 빠짐없이 그의 취재에 응했다. 트럼프는 최근 그의 저작물을 두고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반목하고 있지만 2020년 ‘격노’(Rage)를 출간하기 전만해도 우드워드와 18차례 대면 인터뷰를 했다.

모두 그를 인터뷰에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협조했다. 그러나 나온 책을 보고서는 매번 후회했다고 한다. 악시오스는 “대통령들이 그를 안 만날 수가 없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이 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며 “그가 인터뷰 했던 모든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은 우드워드가 가진 정보를 듣자 놀라워하며 출처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고 평했다.

밥 우드워드(왼쪽), 그가 출간한 책 ‘전쟁중인 부시’ 표지 /AP

우드워드의 ‘폭로’엔 좌우(左右)가 없다. 최근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를 다룬 책을 잇따라 내고 있지만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 이념을 불문하고 이들의 임기를 비판적으로 저술하기로 유명하다. 클린턴 백악관을 다룬 ‘어젠다(Agenda·1994년 출간)’에서 우드워드는 경제 정책을 다듬는 데 클린턴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던 정황을 자세하게 기술했다. 특히 연방 재정 적자나 의료 개혁 문제 등을 두고 대통령 고문들 간 심각한 이견(異見)이 돌출됐지만 그가 참모들을 통제하지 못했다고도 비판했다.

2010년 출간한 ‘오바마의 전쟁’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략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오마바 행정부가 내부적으로 대립하고 균열하는 상황을 자세하게 취재해 폭로했다. 오바마와 당시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당시 중부사령관 등 군부 최고위간 ‘불화’도 가감없이 공개했다.

이번에 출간되는 ‘전쟁’에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뚜렷한 소신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책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영리하고 충성스러운 2인자였지만, 바이든 행정부 외교 정책에 큰 영향력은 없었다”고 했다.

또 바이든이 차남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사석에서는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후회한다고 발언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가족에 대한 수사를 결정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갈런드를 임명해서는 절대 안 됐었다”면서 “빌어먹을, 이건(차남 수사)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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