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낸 허리케인 헐린(4등급)에 이어 밀튼(5등급)이 플로리다주(州)를 향해 북상하며 조 바이든 정부가 비상에 걸렸다. 백악관은 8일 “바이든 대통령이 10~15일 예정됐던 독일·앙골라 방문을 취소한다”고 했다. 초대형 허리케인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고,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에 따른 피해를 정부 실정(失政)으로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발목을 잡고 나섰다.
밀턴은 최대 풍속 시속이 250km인 5등급 허리케인이다. 이날 오후 8시쯤 플로리다 서부 해안에 근접해 다음 날 오전 8시쯤 플로리다반도를 관통한 뒤 같은 날 오후 대서양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주 전 헐린이 최소 89명의 사상자와 최대 130조원의 막대한 물적 피해를 야기한 가운데, 또 한 번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이 재임 중 한 번도 찾지 않은 아프리카 방문까지 전격 취소한 건 허리케인의 후과(後果)가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헐린은 이번 대선의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에 피해가 집중됐는데, 통상 허리케인 같은 대형 자연재해는 집권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가 제어 기술로 날씨를 조작해 공화당 우세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는 황당 음모론이 소셜미디어에 확산하는 것도 바이든엔 골칫거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올해 초 공화당 대선 경선 낙마 후 한동안 조용했던 디샌티스가 전면에 등장해 박빙 승부 속 갈 길이 바쁜 해리스에 재를 뿌리고 있다. 재난 대응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 유기적인 협조가 중요한데, NBC는 7일 “디샌티스가 해리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정치적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디샌티스 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진실 공방이 한동안 계속됐다. 디샌티스는 “그녀(해리스)가 전화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디샌티스는 바이든과는 통화를 갖고 헐린 복구 노력, 밀튼에 대한 대비 상황 등을 보고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해리스는 디샌티스의 비협조에 대해 “절실한 지원이 필요한 절정의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게임을 하는 건 전적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디샌티스가 해리스를 향해 “망상(delusion)을 하고 있다”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그는 “해리스는 허리케인을 대비하는 와중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3년 반을 부통령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폭풍을 겪었지만 이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에 어떠한 기여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18년부터 플로리다 주지사로 재직 중인 디샌티스는 “트럼프·바이든 모두와 폭풍우를 겪었고 두 대통령 모두와 잘 협력했다”며 “해리스는 폭풍을 정치화하려는 첫 번째 사람으로 자신의 캠페인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디샌티스는 트럼프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18년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 한때 ‘리틀 트럼프’로 불렸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신성으로 주목받던 그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트럼프로부터 “주지사 선거 때 내 지지를 받으려 애걸했는데 불충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디샌티스는 올해 1월 경선 참여를 중단하며 트럼프에 대한 형식적 지지 선언만 하고 선거운동을 돕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마이애미에서 트럼프와 비공개로 만나 선거 공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자 “국민들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연방 정부와 별도로 자체 수사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