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인해 파괴되는 일자리만큼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의 분노를 유발해 경제를 넘어, 정치적 양극화로 치달을 위험이 있습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사이먼 존슨(61)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15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AI가 초래한 부의 편중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이를 포퓰리스트(대중 영합주의자)가 파고든다면 지금까지 구축한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부의 집중을 완화할 대안으로 일부 정치인과 기업인이 거론 중인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선 “일 자체가 갖는 가치와 존엄성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한다. 인간의 역량을 끌어올릴 직업을 통해 경제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반대한다고 했다.
존슨 교수는 국가의 번영과 쇠락을 정치·경제 제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공로로 다론 아제모을루(57)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64) 미 시카고대 교수와 노벨 경제학상을 14일 공동 수상했다. 아제모을루 교수와는 AI 혁명 시대의 국가 제도를 연구한 책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를 썼다.
-당신은 국가의 운명이 민주주의나 권위주의 등 어떤 체제(institution)를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연구 접근 방식을 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경제학자) 경력 초기 이른바 ‘철의 장막’이 무너진 뒤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 10년간 일했다. 구(舊)소련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근무했다. 당시 거시경제학과 같은 표준 경제학 도구가 기대만큼 (세계를 설명하는 데) 강력하고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다. 이후 나는 부패와 재산권, 누구의 재산은 보호받고 누구는 보호받지 못하는 지 등 비공식 경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권력과 진보’가 출간된 지 1년이 지났다. 경제학자로서, AI는 어떻게 보나.
“AI가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은 아직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AI가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지만,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력은 과소평가하고 있다. 나는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와 함께 MIT에서 ‘일의 미래 형성(shaping the future of work)’이라는 연구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기술의 진보를 멈추기보다는, 이 기술이 저학력자 등 취약층에게 도움이 되는 혁신으로 발전할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지향점을 ‘노동 친화적(pro-worker) AI’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촉진할 방안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몇몇 미국의 빅테크들이 기술을 독점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빅테크들의) 디지털 광고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감정을 조작하기 때문에 상당히 파괴적이다. 이에 대한 세금을 무겁게 매길 경우 (위험한 콘텐츠들을) 밀어낼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 기술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인류 멸종 위험 등)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걱정하는 건 (AI 기술 등을 통한) 자동화를 통해 많은 일자리가 파괴되고,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기계와 알고리즘이 사람을 대체하고, 없어진 일자리를 대체 할만큼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한국 및 다른 많은 곳에서 중산층에 대한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고 결국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노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사회적 분노를 줄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기술이 어떻게 변화할지, 이런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성장을 지속하고 불평등 심화를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과학적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거대 시장 외에 ‘틈새 시장’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의 놀라운 점은 그런 틈새시장을 찾아서 잘 해냈는 것이다. K드라마를 수출하는 문화 강국이 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이 계속 발전해나가기 위해 고쳐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쉽지 않았다. 민주화는 중산층의 발전과 함께 맞물려가며 진행됐는데, 이는 한국이 앞으로도 매우 강해질 것이라는 큰 자신감을 준다. 다만 여전히 (한국 경제를) 상대적으로 소수의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은 조금 의외다. 나도 (한국계 미국인인 아내 덕분에) 한국인 친척들이 있다. 이들은 나에게 ‘(한국에서)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적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국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한국이 이룬 성취에 큰 존경을 표한다. 다만 번영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세계가 과도한 포퓰리즘과 당파적 극단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까 경제에 따른 분노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해 포퓰리즘이 들어갈 틈을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를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 대표적인 예인 아르헨티나를 보라. 아르헨티나는 1900년에는 1인당 평균 소득 상위 10위권 국가 중 하나였지만 20세기 들어 꾸준히 후퇴했고, 여전히 경제 성장과 부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포퓰리즘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의 위험은 그것이 사람들이 그 사회에 대해 가질만 한, 합당한 분노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그 분노를 잘 살펴야 하고 사람들이 왜 좌절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권력과 진보’는 방대한 데이터, 첨단 반도체 등이 필수인 AI는 태생적으로 거대 기업 몇 곳의 독과점으로 수렴되기 쉬우므로 분배 방식을 특히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대안 하나로 거론되는 기본 소득에 대해선 “‘당신들의 도태는 불가피하니 돈이라도 나눠주겠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내러티브”라고 반대한다.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제모을루 교수는 한 온라인 방송에서 “1%, 10% 혹은 20%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지. 빵 부스러기나 먹자’라며 행복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부의 독점에 대한 대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이들도 있는데.
“보편적 기본소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 소득 의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 점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일에는 가치가 있고 존엄성이 있다. 매우 열악하고 힘든 직업도 있지만, 개인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직업도 있다. 저는 이런 일자리를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우리 경제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가 한국계이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 비빔밥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역사와 물론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 정말 좋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 가족 모두가 한국어를 배우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워싱턴 DC에 있는 문화원을 통해 원격 수업을 들었다.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막내 딸은 한국어를 꽤 잘한다.”
☞사이먼 존슨
1963년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포드대를 졸업하고 맨체스터대에서 석사,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MIT에서 교수를 맡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가 경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오래 연구해왔다.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적극적인 규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와 함께 ‘권력과 진보’를 작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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