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화제의 인물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11일 워싱턴 DC에 오픈할 예정인 비영리 한식 레스토랑 '시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 기사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돼 큰 인기를 끈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엔 1등만큼 큰 박수를 받은 2등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52·Edward Lee)다. 요리 실력과 함께 프로그램 내내 보인 겸손한 모습, 한번 탈락하면 끝인 서바이벌 승부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이끌면서 수프부터 디저트 크림 브륄레까지 코스 요리를 하나 하나 내놓은 파격, “옛날 사람 균은 막걸리를 좋아하고, 요즘사람 에드워드는 위스키를 마신다”는 은유, 한글로 적은 꼬깃꼬깃한 편지를 읽어내려 간 진심까지 그의 모든 게 화제가 됐다. 그는 요리 경력이 30년이 넘고, 미국에선 이미 여러 방송에 출연해 유명한 셰프다.

지난 11일 워싱턴 DC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인 유니언 마켓에서 만난 이씨는 ‘제로 플라스틱’이 목표인 비영리 한식 레스토랑 ‘시아(SHIA)’ 오픈 준비로 분주했다. 여섯 살 반려견 재스퍼를 끌고 이곳저곳을 누비던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사람들에 보여줬고, ‘에드워드’와 ‘균‘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의 정체성 고민도 끝낼 수 있었다. 우승은 못 했지만 목표를 이뤄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틀 전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이씨와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다.

◇“백종원·안성재, 일관성 있는 심사… ‘이모카세’ 제일 인상적”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최종 8인에 오른 (왼쪽부터) 최현석, 정지선, 장호준, 에드워드 리 셰프. /뉴시스

-‘흑백요리사’ 이후 올라간 인기를 실감하나.

“인천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날 밤 여의도 불꽃축제 때문에 길이 막혀 차에서 내려 두 블럭을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그전에도 한국에 휴가차 방문한 적이 많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경력 초기엔 미국·프랑스·이탈리아 음식을 주로 했다. 나이가 들며 한식에 대해 점점 더 많이 고민하게 됐고, 내가 배운 모든 것을 갖고 (한식 관련)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식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 참여하게 됐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첫 넷플릭스 시리즈란 점도 매력적이었다. 부탁하지도 않았지만, 심사위원을 하라 했으면 아마 안 했을 거다.”

-메인 심사위원이었던 백종원·안성재 두 사람은 어땠나.

“주력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매우 다른 관점과 태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내 일관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공정했다고 생각한다. 백씨가 운영하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에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늦은 밤 편의점에서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은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참가자는.

“꼭 고급 식당에 가야만 좋은 음식이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참가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이모카세 1호’란 별명으로 불린 김미령 셰프였다. 다들 이탈리아·퓨전 요리 등을 할 때 한국 음식을 만들었고 간단한 음식에도 지혜와 기술이 담겨있더라.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같은 팀이 아니라 함께 요리는 못했지만 계속 지켜보았다.”

◇“한국이 고향 같은 기분 좋은 소속감… 한식 알려 기뻐”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화제의 인물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11일 워싱턴DC에 오픈할 예정인 비영리 한식 레스토랑 '시아'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이 있었을 것 같다.(이 셰프는 넷플릭스에서 스스로를 ‘비빔 인간’이라 표현했다.)

“균(Kyun)이란 한국 이름은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나와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도 ‘한국 이름이 그거였냐’고 깜짝 놀랐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브루클린에 정착한 우리 부모님은 ‘진짜 미국인이 돼야 한다’며 심지어 ‘한국어를 너무 많이 배우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내가 대학을 영문과까지 간 이유다. 나도 의도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한 것을 회피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100% 미국인, 100% 한국인 둘 다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젊어서는 미국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런데 지금 11살인 딸이 생기고 나서는 내가 한국 문화를 더 잘 이해해 딸에게 알려주고, 한국적인 유산도 물려주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딸에게 ‘너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지만 아주 오래된 한국 문화와도 연결돼 있다’고 말해준다.”

-딸은 한국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루는 딸이 BTS 음악을 듣고 있더라. ‘한국 음악을 좋아하냐’ 물으니 ‘아빠, 이건 그냥 음악이에요’라고 답했다. 나보다 더 미국인인 딸이지만 지금 아이들은 국경, 경계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 다음 세대는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흡수하는 일에 있어 나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국 음식만 봐도 알 수 있다. 30년 전에는 ‘아시아 음식’ 하면 일본 스시(초밥) 정도만 알았다. 한식이 한 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미국에서 이런 인기를 끌게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나.”

-‘흑백요리사’를 통해 무엇을 이뤘다고 생각하나.

“나는 한국과 나를 연결해 줄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예전과 다르게 이번에 한국에 가니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속감이 아주 기분 좋았다. 또 프로그램 끝나고 브라질·터키·나이지리아·영국 등 전세계 사람들이 나에게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보내 ‘떡볶이’가 뭐냐고 묻는다. 한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계에 알리는 것 또한 나의 목표였다.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됐으니 나는 우승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셰프 에드워드 리(오른쪽)가 한 유튜브 채널에 모친과 함께 출연해 요리를 하고 있다. /유튜브

-부모님들은 어떤 분이셨나.

“대부분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돈이 많지 않았고, 여러 직업을 갖고 근면성실하게 일하셨다.(그는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는 두 분을 보고 직업 윤리를 갖게 됐다. 부친은 ‘우리가 가난하다고 해서 멍청한 건 아니니 계속 공부하고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 ‘돈이 없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한국계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셰프가 되겠다고 했을 때 화를 내셨다. 변호사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잘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기 싫은데 그렇게 돈을 벌면 뭐 하나. 지금은 모친이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어머니가 인터뷰 시점까지 ‘흑백요리사’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어 실력이 그게 뭐냐’고 핀잔을 줬다고 했다. 이씨는 촬영이 있기 3주 전쯤 한국어 선생님을 고용해 과외를 받았다.

◇“국빈만찬, 자랑스러운 경험… 尹이 소갈비찜 칭찬”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백악관 국빈만찬 당시 셰프로 초청돼 음식을 준비한 에드워드 리(가운데)가 메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요리 실력만큼이나 ‘어록’이 화제가 됐는데, 말을 굉장히 잘하는 것 같다.

“요리는 15살 때 뉴욕 트럼프타워의 한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면서 시작했다. 부모님이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고 말해 뉴욕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다. 책을 세 권 썼는데 자부심이 크다. 셰프가 아니면 작가가 됐을 것 같다. 다만 글쓰기는 고독한 일이고, 특히 젊을 땐 (식당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더 좋았다.”

이 셰프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백악관 국빈 만찬 때 셰프로 초청됐다. 그는 처음엔 한국 요리를 잘 못한다고 거절했지만, ‘미국과 한국 음식의 조화를 보여 달라’는 백악관의 요청에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백악관 국빈 만찬 후 평가는 어땠나.

“우선 평생을 힘들게 일한 어머니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만들어드려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 윤 대통령이 주방에 들러 ‘어릴 적 먹었던 소갈비찜이 떠올랐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서울에 레스토랑을 열 계획은 없나. 사업 제안이 많을 것 같다.

“레스토랑은 셰프의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경영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한국을 더 많이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로운 식당에 가려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한 곳을 꼽기는 힘들지만 최근엔 온지음(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화제의 인물인 셰프 에드워드 리 부부가 키우는 반려견 재스퍼.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인생의 긴 목표도 있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할 뿐이다. 지금도 뉴욕, 로스앤젤레스(LA)에서 레스토랑을 해보자는 제안이 많지만 나한테는 맞지 않는 듯해 거절하고 있다. 나는 인생이 여행이라 생각하고, 모든 걸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때로는 귀를 기울이면 인생이 ‘이렇게 해보라’고 작은 힌트를 주기도 한다.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9·11 테러로 단골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지금도 이 트라우마를 다 극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6개월을 머물게 된 켄터키주(州)에서 식당을 운영하게 됐고 20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지금의 아내와도 거기서 만났다. 우리는 인생에서 때때로 매우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거나 치밀한 계획을 갖고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또 다른 도전… “레스토랑의 지속 가능성 시험해볼 것”

-한식당은 새로운 도전 아닌가.

“총 22석밖에 안 되는 규모로 이달 말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플라스틱, 랩, 가스 등을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 봉투조차 생분해되는 친환경 제품을 쓴다. 손해를 감수하고 5년 정도 운영해 볼 계획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국의 어떤 식당이라도 우리가 택한 모델을 적용할 수 있게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비용을 분석해 공개할 예정이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가 다른 레스토랑들에도 영감을 주기를 원한다.”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이는 이유는.

“이게(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내가 일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싫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힘든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아울러 레스토랑은 앞으로도 계속 인기가 많을 듯한데, 우리 자녀 혹은 다음 세대를 위해 (식당에서) 플라스틱을 덜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10월 말 워싱턴DC에 오픈할 예정인 셰프 에드워드 리의 비영리 한식 레스토랑 '시아' 내부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에드워드 리(Edward Lee)

197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처음으로 맨해튼 트럼프 타워의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뉴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현재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정통 남부 요리를 선보이는 ‘610 매그놀리아’,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나미 모던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 워싱턴 DC와 메릴랜드에서 남부·한식 퓨전 요리를 내는 ‘수코태시’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訪美) 당시 백악관 만찬의 게스트 셰프를 맡았다. 요리를 통한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아 2017년 ‘더 리 이니셔티브(The LEE Initiative)’를 설립해 여성·흑인 요리사,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농부 등을 지원해왔다.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버번 랜드’ 등 책을 세 권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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