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발표된 CNBC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48%, 카멀라 해리스 46%. 전날 월스트리트저널 발표도 트럼프 49%, 해리스 46%였다. 그러나 같은 날 영국 이코노미스트, 22일 로이터 통신과 더 타임스 조사는 해리스가 약간 앞선다. 여론조사 분석 웹사이트인 270towin.com이 10월17일부터 24일간 발표된 13개 여론조사를 평균한 결과는 해리스가 0.8% 포인트 박빙(薄氷)의 차로 앞선다. 뿐만 아니다. 이번 연방 상ㆍ하원을 장악하기를 원하는 정당의 선호도도 민주당 민주당 46.6%, 공화당은 45.8%. 역시 0.8% 포인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00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선거 이래, 미국 대선에선 공화ㆍ민주 어느 당도 득표율이 53% 이상, 46%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모두 5%포인트 내에서 승패가 갈렸다. 예외는 버락 오바마가 처음 등장한 2008년 대선이었다.<아래 표 참조>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경제가 요동을 치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극단으로 치닫든, 지난 20여 년 전국 규모의 미국 선거 결과는 동전을 던져서 앞 뒷면이 나올 확률과 비슷했다. 서방의 주요 선진국 중에서 이렇게 ‘50대 50′으로 고착된 선거 결과를 나타낸 나라는 없다.

로널드 레이건이 ‘낮은 세금, 작은 정부’로 1980년 대선에서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중에서 489명을 확보하고, 1984년 재선에서 미네소타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압승한 사례는 정말 ‘옛날 얘기’가 됐다.

물론 우리나라 대선도 2007년(이명박 당선), 2017년(문재인 당선)과 같이 3명 이상의 주요 후보가 나온 경우를 제외하곤, 같은 기간(1997년~2022년) 치러진 대선에서 같은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미 연방의회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인 2022년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의 업무 지지도는 부정이 55%, 긍정이 40%로 15%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수십 년 전이라면, 이런 경우 하원 의석은 공화당이 휩쓸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그 해 하원 장악엔 성공했지만, 전체 435석 중에서 고작 9석 앞섰다(현재는 공화 220ㆍ민주 212ㆍ공석 3). 그 이전인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었을 때에도 의석 수 차이는 9석이었다.

과거엔 달랐다. 1959~1995년 미 연방 하원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을 최소 50석 이상 앞섰다. 3차례 선거에선 무려 100석 이상 앞섰다.

지금은 대선이든, 연방의회 선거든 민주ㆍ공화 양당은 최소 45% 지지는 기본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절반은 늘 ‘소외’됐고, 권리가 ‘박탈’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당도 백악관이든, 연방 의회든 장기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국 민주당은 1955~1995년 하원을 장악했다. 지난 15년 동안 미 하원은 4번이나 다수당이 바뀌었다.

◇왜 이렇게 됐나

50대50의 구도는 양당이 많은 부동층 유권자를 상대로 치열한 정책 대결을 빚어 쟁취한 것이 아니라, 지지 기반의 정치적 경화(硬化) 현상과 미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가 빚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치학자들은 크게 우려한다. 하지만 2년전 애틀랜틱 몬슬리는 이 50대50 현상을 다루면서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 가지 설명은 1960년대 미국 민주당이 흑인 인권을 중시하는 여러 민권법을 제정하면서, 과거 민주당의 확고부동한 지지층이었던 남부의 백인 유권자들이 대거 공화당으로 이동했고 그 결과 양측의 지지 기반 규모가 더 비슷해지고 경쟁적인 구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의 정치학자인 릴리아나 메이슨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종교ㆍ가족ㆍ직업의 안정성 개념이 점차 사라지면서, 정치가 새로운 ‘소속감’이 됐다”고 분석했다. 즉,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는 정치 성향은 그 사람의 태도와 거주지, 옷을 입고 말하는 스타일까지도 구별하는 ‘메가 아이덴티티(mega identity)’가 됐다는 것이다.

1940~2000년 미국인의 70% 이상이 ‘교회’에 간다고 답했다. 2020년 갤럽 조사에선 47%로 내려갔다. 대신에 정당이 그들이 모이는 ‘양떼’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속감은 정반대가 뚜렷하게 존재할 때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또 미국인 대부분은 라디오와 팟캐스트, 유튜브 등의 즐겨 찾는 채널에서 모두 같은 소리만 울리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안에서 살며,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사람과는 교류가 단절돼 있다.

◇”설득할 부동층도 별로 없다” 양당, 타협ㆍ개혁 필요 못 느껴

따라서 지더라도, 굳이 외연을 넓히려고 정책을 개선하거나 당을 개혁할 동기가 별로 없다. 두 번이나 탄핵 기소됐고 현재도 여러 건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중범죄자(felon) 신분인 트럼프가 전혀 아랑곳없이 이렇게 경쟁적인데, 굳이 입장을 완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21세기 들어 공화ㆍ민주 양당 모두 한 번도 진정으로 권력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어느 당이든 늘 연방 상하원 중 하나는 차지했고, 20여 개 주에서 주지사를 냈고, 이번에 실패해도 다음 번엔 후보에 상관 없이 백악관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50대50 구도는 역설적으로, 양당 모두 유권자들의 필요나 결핍에도 ‘덜 민감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밴더빌트대 정치학자인 존 사이즈는 애틀랜틱 몬슬리에 “대선 결과는 몇 개의 주[매번 선거 결과가 바뀌는 경합 주]에서 아주 약간의 표차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당으로선 장기적 시각에서 정책을 개발해 제시하는 것보다, 이런 경합 주에서 몇 천 표를 더 얻는 것에 주력하게 된다. 공화당에선 그동안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 유권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전략이 수차례 수립됐지만, 다 물거품이 됐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선에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외연을 넓히려 했다. 그러나 유권자 투표에서 지고, 아슬아슬하게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겼다. 2004년 대선에선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어차피 설득할 ‘부동층(浮動層)’도 별로 없다고 판단해, 지지자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전략으로 돌았다. 그 결과, 부시는 2000년 대선에선 5045만 표(48.4%)를 얻었지만, 2004년에는 6204만 표(50.7%)를 얻었다.

2016년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전체적으로 286만 여표 차이로 졌지만, 펜실베이니아ㆍ위스콘신ㆍ미시간 3개 주에선 7만7000표 차이로 클린턴에 이겼다. 이 3개주 46명의 선거 인단 확보가 그의 승리(선거인단 확보 304명ㆍ과반 270명)를 결정지었다.

2004년 미 대선 결과를 마지막에 결정 지은 것도 선거인단 20명이 걸린 오하이오주 결과였다. 오하이오를 빼고 조지 W 부시는 266, 존 케리는 251명을 확보했다. 다음날 새벽 부시는 존 케리를 불과 2.1% 포인트에 해당하는 11만8000표로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대선 후 미국 사회 ‘안정성’도 50대50

미국의 보수적인 정치평론가인 매트 K 루이스는 지난 16일 의회전문뉴스지인 ‘더 힐’ 기고에서 “아슬아슬한 선거 결과는 부정 선거 시비를 초래하고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이걸 깨는 방법은 어느 한 당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인데, 지금은 양당이 지지 유권자들과 ‘진드기’보다도 더 강하게 붙어 있다”고 했다.

FT는 23일 “1945년 이후 서방의 안정은 영국의 보수당, 독일의 기독교민주당, 프랑스의 우파, 그리고 어느 정도는 20세기 후반부 의회를 장악한 미국 민주당과 같은 지배적인 한 정당이 주도했다”며 “이긴 정당은 상대 정당에 관대할 수 있었고 진 정당은 외연을 넓히려 애썼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현재 추세를 보면, 미국은 누가 이길지 감(感) 없이 11월 5일 선거일을 맞을 것”이라며 “2000년 아슬아슬했던 미 대선 결과는 신선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이제 50대50은 대선 이후 미국 사회가 맞을 ‘평화’의 확률처럼 들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