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신분증 있으면 지금 바로 대통령 투표하세요! 우편 투표 신청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의 시청 앞에서 더그 팔머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명씩 붙잡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이미 민주당 승리가 굳어진 서부 워싱턴주 출신이라는 그는 “워낙 박빙인지라 자원봉사를 하려 한 주 휴가를 내고 필라델피아로 날아왔다”고 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차를 타고 동북쪽으로 30분을 달리면 나오는 소도시 레빗타운의 주택가는 분위기가 달랐다. ‘트럼프’ 이름이 적힌 푯말만 보였다. 레빗타운이 속한 벅스카운티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이 51.5% 득표율로 도널드 트럼프(50.3%) 전 대통령을 간신히 꺾었다. 공화당 지역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엔 (여기서) 트럼프가 이긴다. 그렇다면 전체 대선 결과는 볼 필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1월 5일 열리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선은 선거가 이어진 ‘수퍼 선거의 해’를 마무리할 최대 이벤트다. 미 대선을 약 열흘 앞두고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율은 여전히 접전을 기록 중이다. 23일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선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47%가 트럼프, 45%가 해리스에게 투표한다고 밝혀 트럼프가 다소 앞섰지만 오차 범위 내였다.

그래픽=양인성

전국 단위 지지율보다 중요한 것은 경합주 판세다. 미 대선은 주별로 분포된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최소 과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하면 당선된다. 올해는 경합주 일곱 곳에 걸린 선거인단 93명을 더 많이 획득한 후보가 이기는 구도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경합주에서 1~2%포인트 차 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을 결정지을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지난 6월엔 암살 시도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트럼프 지지율이 치솟았고, 8월 초엔 공식 대선 후보로 갓 오른 해리스가 눈에 띄는 우세를 보이는 등 판세는 뒤집혀 왔다. 최근엔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약간 높다는 진단이 비교적 자주 나오고 있다. 선거 예측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는 23일 뉴욕타임스에 “내 직관으로는 트럼프가 승리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가 운영하는 대선 예측 모델 ‘실버불레틴’은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50.2%로, 해리스(49.5%)를 최근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대선 연구 권위자인 앨런 아브라모위츠 에머리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매우 접전”이라면서도 “해리스의 승리 확률을 50~60% 정도로 본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22일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내려 차를 타고 I-95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높이 20m 이상 우뚝 솟아 있는 빌보드(대형 입간판)를 1㎞에 두세개꼴로 볼 수 있었다. 해리스·트럼프 캠프와 이를 지지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가 선거 수개월 전부터 입도선매한 것들로, 양당은 경합주 일곱곳 중 펜실베이니아에 가장 많은 2억7930만달러(약 3900억원, 지난 8일까지 기준)를 광고비로 지출했다. 2~3위(미시간· 위스콘신)에서 쓴 돈의 합보다 많다. 해리스 측 광고판은 낙태권 등 여성 생식권을 비판하는 트럼프의 위험성을, 트럼프 측은 고(高)물가와 다수의 전쟁을 통제 못 하는 ‘부통령 해리스’의 무능함을 각각 부각했다.

현지에서 만난 유권자들도 비슷하게 생각이 쪼개져 있었다. 민주당 자원봉사자인 케네스 매클랜드씨는 “‘히틀러도 좋은 일을 했다’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번이 마지막 (자유민주주의)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반면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생인 하비어 나임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가솔린 가격이 두 배가 됐고, 대학가 일대 주거 비용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해리스가 제대로 관리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필라델피아 “대통령은 우리가 결정한다” -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공원에 들어선 투표 독려 캠페인 간판. ‘필라델피아가 (대통령을) 결정한다’라고 적혔다. /필라델피아=김은중 특파원

현재 미 대선은 해리스가 뉴욕·캘리포니아 등 인구가 밀집한 도시가 많은 주를 중심으로 226명, 트럼프가 텍사스·플로리다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219명의 선거인단을 각각 안정적으로 확보했다고 분석된다. 해리스 입장에선 지금까지 트럼프에게 근소하게 앞섰던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인 미시간(선거인단 15명)·위스콘신(10명)·펜실베이니아(19명)에서 모두 이기면 승리에 안착할 270석을 확보하게 된다.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를 놓칠 경우 선벨트(일조량 많은 남부) 경합주 네 곳 가운데 두 곳 이상은 가져와야 이길 수 있다. 이 중 선거인단이 상대적으로 많은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선거인단 각각 16명씩)는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이어서 해리스의 승리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애리조나(11명)도 공화당이 대체로 우세인 지역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6명)는 그나마 해볼 만하다고 평가받지만 선거인단이 6명으로 경합주 중 가장 적다.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를 잃으면 대선을 잃을 것”이란 분석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의 경우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면 선거인단 238명(공화당 우세 주 219명+펜실베이니아 19명)을 확보하게 돼 선벨트 네 곳(선거인단 총 49명) 중 한두 군데를 혹시 잃어도 승리를 굳힐 수 있게 된다.

2020년 대선 때 경합주 7곳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간 득표율 격차가 3%포인트 미만이었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 좁혀지리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지난 22일 기준 NYT가 집계한 여론조사 평균을 보면 해리스와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미시간·노스캐롤라이나·네바다 4곳에서 48%로 동률이라고 나타났다. 해리스는 위스콘신(49% 대 48%)에서 앞섰고, 트럼프는 애리조나(50% 대 48%)·조지아(49% 대 48%)에서 우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에 비해 전통적 지지층인 흑인·라틴계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빠지고 있는 건 해리스에게 악재다. 조지아 인구는 약 3분의 1이 흑인이고, 펜실베이니아도 흑인·라틴계를 합한 비율이 30%에 가깝다. 트럼프는 23일 조지아 유세에서 “기록적인 사전 투표는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그 수가 아주 크면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USA투데이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인도계 흑인인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흑인 유권자 지지율은 72%로 4년 전 바이든(92%)에게 크게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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