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11월5일)이 열흘 남짓 남은 시점에서,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지지 후보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26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6년 간 대선을 앞두고 사설을 통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던(endorse) 관행을 깨고 이번 대선에서는 지지 후보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도 이번 대선에서 이 언론사가 지지하는 후보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세계 2위의 억만장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하고 있으며,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역시 남아공 출신의 중국계 미국인 바이오테크 거물인 패트릭 순시옹이 2018년에 사들였다. 그는 119억 달러의 자산가다.
워싱턴 포스트는 26일 “논설실장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썼지만, 사주인 베이조스가 이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두 신문이 관행을 깨고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겠다고 하자, 편집과 논설 파트를 맡은 간부들이 사임하는 등 반발도 커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총괄편집인인 로버트 케이건은 ‘지지후보 발표 포기’ 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그는 “이번 (未게재) 결정은 이길 것 같은 후보에게 먼저 무릎을 꿇는 것과 같다”며 “베이조스와 같이 미국 경제의 일부인 사람이라면 권좌에 앉은 자와 좋은 관계를 갖고 싶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다른 쪽에 있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의 편집인이었던 마틴 배런은 소셜미디어 X에 “용기 있는 결정으로 널리 알려졌던 기관에서 발생한 당황스럽게 나약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의 기자 조합도 “경영진이 사설을 담당한 구성원들의 일에 관여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구독자 수가 계속 줄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이 신문의 전설과 같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대선을 12일 앞두고 내려진 이 결정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끼친 위협에 대해 그동안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해온 압도적인 증거들을 무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1976년부터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밝혔다. 이후 지지 후보를 내지 않았던 1988년 대선 때만 빼고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베이조스가 작년에 뽑은 이 신문의 CEO 윌 루이스는 “일부에서는 이 결정을 (신문사의 공공) 책임 포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루이스는 지지 후보를 발표하지 않는 결정이야말로 “이 신문의 뿌리로 돌아가는 결정이며, 워싱턴 포스트는 1960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이나 존 F 케네디 중 어느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윌 루이스는 친(親)트럼프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영국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도청 지시 등 취재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 등으로 인해 지금도 조사를 받고 있다. 작년에 워싱턴 포스트의 CEO로 취임했다. 머독이 소유한 뉴욕시 타블로이드 신문인 뉴욕포스트는 “선택은 분명하다”며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한편,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논설실장인 마리엘 가르자도 사주의 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그는 “우리가 침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사임했다”고 말했다. 사주인 패트릭 순시옹은 “독자들에게 분명하고 비당파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딸은 소셜 미디어에서 “이번 미게재 결정은 트럼프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취한 중동 정책과 관련이 있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을 관장하고 있는 후보[해리스]를 승인하기를 거부한 것”이라고 썼다.
베이조스는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하는 동안 상당한 마찰을 빚었다. 그의 아마존은 2019년 미 국방부의 100억 달러 계약 수주전에서 “트럼프로부터의 점증하고 명백한 압력” 탓에 탈락했다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계약은 마이크로소프트 사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 AP 통신은 워싱턴 포스트의 지지 후보 ‘포기’ 결정이 있고 수 시간 뒤에, 트럼프가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인 블루 오리진 간부들과 만나 환담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9월 30일 해리스 지지를 선언했다. 이 신문은 해리스를 “유일한 애국적 선택”으로 지지하면서, 트럼프는 “자신의 이익보다 나라 전체의 선을 우선해야 하는 대통령직에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