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5일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요 경합주에서 초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지지율이 최근 상승세란 분석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결과를 단언하긴 이르다는 의견이 대세다. 이런 가운데 대표적 경합주인 조지아에서 해리스가 한국어판 정책 자료집을 제작해 25일부터 조지아주 내 한국계 주민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이번 대선 결과는 7개 경합주의 승패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며, 조지아는 펜실베이니아에 이어 가장 많은 16명의 선거인단(총 선거인단 538명, 270명 이상 획득하면 당선)이 걸려 있다. 조지아주에 많이 거주하는 한인의 ‘한 표’가 전에 없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30여 년간 유권자 운동을 해온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김동석 대표는 지난 24일 워싱턴 DC에서 본지와 만나 “트럼프의 상승세가 부각되는 가운데 해리스가 막바지 지지율 끌어올리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과 한인 피해를 보고 유권자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여섯 번 대선을 거치며 현장 곳곳을 돌면서 민주·공화 양당의 캠프 주요 관계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고 있다.
-몇 주 사이 여론조사 결과에서 트럼프 상승세가 올라가는 이유는.
“트럼프 상승세보다는 해리스 지지율의 정체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이번 미 대선의 판세는 몇몇 굵직한 사건에 의해 엎치락뒤치락해왔다. 지난 7월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가 유세 중 피격당한 직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대관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전당대회가 끝나는 바로 그 일요일(21일), TV토론에서 참패해 사퇴 압박을 받던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대형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모든 관심이 바이든 사퇴와 해리스 등판에 쏠렸고 한동안 미디어에서 ‘트럼프’란 이름이 사라졌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기세가 이어지면서 바이든을 크게 앞섰던 트럼프를 해리스가 역전하는 단계까지 갔다. 그러나 8월 이후 해리스 지지율은 더 오르지 못하고 있다. 캠프 내부 인사들도 지지율 상승이 멈춰 고민이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경합주 표심이 결집하지 않고 (흑인 등) 지지층이 고개를 돌렸다. ‘거품’에 한계가 온 것이다.”
-해리스 지지율은 왜 정체됐나.
“가장 큰 원인은 ‘개성 부족’이다. (같은 흑인 정치인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만큼의 독보적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흑인 여성’으로서의 저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장한 오바마는 대중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표심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여러 차례 현장에서 봤는데, 해리스가 무대에 오르면 그런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최초의 흑인 여성’ 후보 아닌가. 내세우기 참 좋은데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아직 분명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흑인·라틴계는 왜 등을 돌리나.
“4년 전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은 2020년 5월 미네소타주에서 플로이드가 사망한 후 전국적으로 번진 흑인 인권 시위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덕을 봤다. 이를 바탕으로 소수 인종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백인인 바이든에게 회의적이었던 이들도 ‘소수 권익을 앞세우겠다’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믿고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 그런데 바이든이 집권한 후 이들을 위해 해준 것이 없다. 예를 들어 히스패닉계(중남미 출신)에겐 이민 문호 확대를 약속해놓고, 입법에 실패했다. 엎친 데 덮쳐 경제 상황까지 악화됐다. 미 전역의 흑인·히스패닉계들은 ‘민주당이 약속을 지킨 것이 없다’며 배신감을 토로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하면 그래도 경제 상황은 조금 낫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리스의 선거 전략은 어떤가.
“뒤돌아보면 선거는 결국은 일대일로 만나는 ‘지상전’이 제일 중요하더다. 캠프 운동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설득해야 한다. 4년 전 바이든은 조지아에서 불과 약 1만표 차이(득표율 차는 0.3%포인트)로 승리했다. 민주당이 조지아에서 승리한 건 28년 만이었다. 당시 바이든은 천문학적 금액을 써가며 지상전을 펼쳤고 겨우 이겼다. 그런 전례가 있는데도 해리스 캠프는 광고 위주의 ‘공중전’에 더 주력하고 있다. 최근 위기감을 느낀 해리스 캠프는 전략을 다소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인 단체들에도 ‘호텔비 줄 테니 애틀랜타 한인들을 만나 (해리스 지지를) 이야기해 달라’고 연락이 오고 있다.”
인구 1100만명인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한인은 12만5000여 명(2020년 인구조사 기준)이다. 이들은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던 민주당의 이른바 ‘집토끼’들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상당수가 고물가·고금리 등의 이유로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조짐이 일고 있다고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최근 보도했다.
-트럼프 지지율이 올라간 자체적 변수가 있나.
“트럼프는 지난달 해리스와의 첫 토론회에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 사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막말’ 논란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설화(舌禍)’ 때문에 (한동안 뜸하던) 미디어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됐다. 극단적 언어를 쏟아냄으로써 선거 주도권을 되찾아온 셈인데,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고 본다.”
-대선 최종 결과는 어떻게 예측하나.
“여론조사만 보면 그야말로 초접전이다. 여전히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조지아 등 최대 경합주들에서 부동층(浮動層)을 위한 맞춤형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벌여 성공한다면, 효과는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열흘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 아울러 경합주의 숨겨진 표심이 여론조사에 정확히 나타났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박빙으로 승패가 갈린다면 (2021년 같은) 지지자 불복 사태가 날 수도 있을까.
“미국은 땅덩어리가 커서 현장·우편 개표를 다 하고 난 뒤 취합까지 해서 승자를 가리려면 최종 결과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그간 대선은 이긴 사람이 ‘이겼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가 확실하다고 판단한 후보가 먼저 ‘졌다’라고 인정하면서 끝나는 방식이었다. 트럼프가 등장한 후 이 같은 ‘승복의 관행’은 끊어졌다. 해리스가 주요 경합주에서 아주 작은 표 차로 승리하고, 트럼프가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직접 나서면 곳곳에서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