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를 소유하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AFP 연합뉴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워싱턴포스트(WP)가 미 주요 언론의 오랜 관행을 깨고 후보 지지 공개 표명을 하지 않겠다고 25일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선이 유력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란 비판이 전현직 기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WP에선 2013년 사주(社主)가 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36년 만에 지지 표명을 중단한 배후로 지목됐다. “너무 많은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베이조스에 신문 매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윌리엄 루이스 WP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WP는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대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WP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36년 만이라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 ‘애국적인 대통령의 선택지는 유일하다’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루이스는 “이번 결정이 한 후보에 대한 암묵적 지지, 다른 후보에 대한 비난, 책임 회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가피하게 읽힐 수 있음을 안다”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편집국을 통해 미국인에게 편파적이지 않은 뉴스를 제공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의견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1960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공화당)·존 F 케네디(민주당) 둘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 신문의 뿌리로 돌아가는 결정”이라고도 했다. WP는 박빙이었던 당시 대선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다’라며 지지 표명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CNN 등은 이번 결정의 배후에 사업가인 베이조스가 있다고 지목했다. “WP 내부에서 해리스 지지 사설 초안(草案)을 작성했는데 베이조스가 사설 게재를 거부하며 ‘킬(kill·삭제를 뜻하는 언론계 용어)’을 했다”는 것이다.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2019년 국방부의 100억달러 계약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뒤 “트럼프의 명백한 압력 탓에 탈락했다”고 소송을 벌이는 등 트럼프 재임 기간 마찰을 빚었다.

루이스가 “베이조스는 초안을 받지도, 읽지도,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WP 안팎에서 베이조스의 결정을 비판하는 반응이 쇄도했다. 로버트 케이건 총괄편집인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고 미리 호감을 사려는 시도”라며 사표를 제출했다. 노조는 “매우 중요한 선거를 불과 11일 앞두고 이런 결정을 한 데 깊이 우려한다”고 했고, 오피니언 필진 17명도 이번 결정이 ‘끔찍한 실수’라 주장하며 “신문의 편집 신념을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WP 편집국장 출신인 마티 배런은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비겁한 행동”이라 했고, WP의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원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 WP가 전해온 압도적 보도 증거를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폴리티코는 26일 “베이조스가 너무 강력할 뿐 아니라 전자상거래, 우주 산업 등 너무 많은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매각하거나 독립적인 비영리 단체에 맡기면 베이조스와 WP 모두에 더 나을 수 있다”라고 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州)를 대표하는 언론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도 2018년 사주가 된 외과 의사 출신 억만장자 패트릭 순시옹이 주도해 대선 후보 지지를 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 논설실이 해리스 지지 표명을 결정하고 나서 내린 조치로, 이와 관련해 논설실장인 마리엘 가르자가 지난 23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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