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약 일주일 앞둔 지난 29일 워싱턴DC의 한 공원에 마련된 연단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이 ‘최후의 변론’을 듣기 위해 지지자 수만 명이 모였다. 해리스가 유세한 이 공원은 지난 대선 패배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로 가서 항의하라”고 극렬 지지자를 부추겨 1·6 의사당 습격 사태를 촉발한 곳이기도 하다. 해리스는 “4년 전 트럼프는 이곳에서 국민의 의지를 뒤집으려고 했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약 한 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박빙으로 접전 중인 양당 후보들이 막바지 표 단속에 들어갔다.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전 대선 패배에 불복한 장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에서 최근 찬조 연설자의 설화를 둘러싼 논란을 진화하고 나섰다.

해리스는 29일 워싱턴 DC ‘일립스(Ellipse·타원)’에서 “트럼프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서로 두려워하도록 만드느라 지난 10년을 보냈다”며 “지금 미국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연설했다. 백악관과 붙어 있는 프레지던트 공원의 타원형 잔디밭을 가리키는 일립스는 트럼프가 2020년 대선 패배 후 불복 연설을 한 곳이다. 이에 흥분한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 의사당을 습격해 ‘1·6 사태’가 벌어졌다. 대선 불복과 초유의 폭력 사태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해선 안 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최후 변론’으로 명명된 연설에는 경찰 추산 5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전날부터 공원 주변에 2m 높이 울타리가 설치되고 일대 교통도 통제됐다. 인근 기업들은 상당수가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권유했다. 연설 시작 한참 전부터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1㎞ 가까이 줄이 늘어섰다. ‘트럼프는 중죄인’ 문구가 적힌 그림, 트럼프와 나치의 상징을 합성해 만든 인형도 현장에 등장했다.

해리스는 “4년 전 이곳에서 트럼프는 무장한 군중을 의회로 보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표출된 국민의 의지를 뒤집으려 했다”며 “그는 불안정하고 복수에 집착하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위해 출마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내게 투표하지 않았더라도 항상 국민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타협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백악관에 정적(政敵)의 명단을 들고 갈 것이고, 내가 당선되면 할 일의 목록을 들고 들어갈 것”이라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외교·안보에 있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응원하고 있다”며 “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친구들(동맹·우방)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트럼프는 이틀 전 찬조 연설에서 나온 푸에르토리코 비하 발언의 역풍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드렉설 힐에서 유세를 열고 재임 시절 태풍 피해를 본 푸에르토리코를 지원한 일을 언급하며 “나는 푸에르토리코를 사랑하고, 나보다 푸에르토리코를 위해 더 많이 일한 대통령은 없다”고 했다. 이어 푸에르토리코 등 라틴계 주민이 다수인 앨런타운 연설에서도 “해리스는 여러분에게 빈곤과 범죄를 전달하겠지만 나는 푸에르토리코 주민과 히스패닉계 미국인을 위해 최고의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남서부 '선벨트' 경합주에서 1%p 차로 초박빙을 벌이고 있다. 29일(현지 시각) 공개된 CNN과 SSRS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후보는 애리조나에서 48% 지지를 받아 트럼프 후보(47%)를 1%p 차이로 앞서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앞서 지난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유세에 찬조 연설자로 등장한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는 푸에르토리코를 가리켜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했다. 불법 이민자 문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푸에르토리코를 비하하고 이민 문제의 근원지로 지목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선거인단 19명이 배정된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의 경합주 7곳 중에서도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곳이다.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8만1000여 표 차로 승리했는데,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 약 62만명에 달해 이들이 트럼프에게서 등을 돌릴 경우 박빙 승부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문제의 발언에 대해 “누군가 나쁜 말을 했지만,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이슈를 만들려 하는 것”이라며 “큰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트럼프 측은 해리스의 일립스 연설이 끝난 직후 “이민자의 범죄, 인플레이션, 격렬한 세계 전쟁 등 본인의 끔찍한 정책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전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범죄 조직과 마약 카르텔의 자산을 압류해서 이민자 범죄의 피해자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날 공개된 여론조사에선 해리스와 트럼프가 지지율 격차 1%포인트 이내의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조사에선 경합주 네바다에서 트럼프가 48%, 해리스가 47%를 기록했다. 반면 또 다른 경합주 애리조나에선 해리스가 48%, 트럼프가 47%였다. CNN은 “막판까지 두 주에서 뚜렷한 선두 없이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CBS·유거브의 펜실베이니아 조사에선 두 후보가 49% 동률을 기록했다. 공화당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답한 지지층이 두꺼워 트럼프의 지지율이 항상 과소평가돼 왔다”며 트럼프 우세론을 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경합주 7곳 모두에서 우리가 앞서 있다”고 했다.

☞1·6 의사당 난입 사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2주 앞둔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의 대선 결과(바이든 승리) 인증 절차가 진행되던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다. 공권력이 투입돼 진압·체포하는 과정에서 5명이 사망했다. 연방 의회가 자국민에 의해 물리적 피해를 입은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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